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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기도한 결과(사도행전12:6-10)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베드로는 언제 죽을지 풀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만일에 그가 죽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잠에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사도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베드로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군인들 네 명의 틈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내일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베드로사도는 잠을 푹 자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사도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특히 초대교회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비호를 받으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베드로의 곁에 섰습니다. ‘주의 사자’(a[ggelo" kurivou/앙겔로스 퀴리우)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갑자기 감옥 안이 밝게 빛이 났습니다. 그리고 주의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웠습니다. “빨리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베드로를 고정시킨 쇠사슬이 풀어졌습니다. 천사는 나갈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천사의 말대로 했습니다.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까지 꿈속이었습니다. 베드로자신은 감옥 안에서 환상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진실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착고가 풀어졌습니다. 첫째 감옥을 지나고 둘째 감옥을 지났습니다. 그리고 쇠문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굳게 잠긴 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자동으로 열렸습니다. 그리고 한 거리를 지났습니다. 같이하던 천사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자의식적이십니다. 자결정적인 분이십니다. 항상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으로 건축자이십니다 그래서 피조물들을 관리하시는 분입니다. 피조물의 필요를 항상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만일에 그의 공급이 없다면 지금쯤 모든 우주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주에 대소용돌이를 칠 것이며,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잡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 수 있고 그의 백성들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눌린 자들의 보호자십니다. 자유의 수호자이시며 동정심 많은 상담자이시고, 고난의 종이시며, 승리의 구주십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같이 힘없고, 고난당하며, 고통 받는 사람들이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도했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으며, 베드로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했었습니다. 그때마다 교회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아니 평소에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시고,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면, 우리의 주변이 변화되고, 우리의 주변이 변화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들에게는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에게서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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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사도행전12:1-5)

헤롯과 유대인들은 한마음이 될 수 없었습니다. 헤롯은 로마인의 분봉왕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인과 유대인들은 철천지원수였습니다. 그러므로 헤롯과 유대인들은 친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친해진 것입니다. 헤롯 아그립바1세(Herod Agrippa I)는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그는 로마의 두 황제 갈리굴라(Caligula)와 글라우디우스(Claudius)의 은총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점차 왕이라 불렸고, 팔레스타인 전역의 통치권을 획득했습니다. 54세에 가이사랴에서 죽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킨 직후였습니다(행12:1,6,11,19-21). 그는 자신이 이두메 사람인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로마의 비호아래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면서도 제대로 통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유대정책을 썻습니다.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헤롯이 분석해보니까 예수께 속한 자들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헤롯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기둥같은 몇 명만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사도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만 죽이면 교회가 와해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헤롯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무교절을 이용해서 유대인들을 즐겁게 해주고자 베드로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무교절의 7일 첫날에 베드로는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축일기간에 갇혀있어야 했습니다. 아그립바는 축일이 끝나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재판에 붙여서 사형시킬 참이었습니다. 혹시 사도단들과 교회의 성도들이 베드로를 탈옥시킬까봐서 군인 넷에 네 무리로 돌아가며 지키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두명과 감옥문에 둘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를 지키기 위해서 로마는 하루에 16명을 투입한 것입니다. 그만큼 아그립바는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서 탄탄하게 베드로를 죽일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교회는 어떤 방법이 없었습니다. 야고보에 이어서 베드로를 잃는다는 것은 예루살렘교회로서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베드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를 헤롯 아그립바가 잡아갔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하고, 야고보가 순교당했지만 교회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Calvin). 절망하지 않고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세상은 어떻게든지 우리를 괴롭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어렵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성도들일 수 없습니다.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한다는 것은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간절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성도들이나 교회를 위해서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하고 돕기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습니다. 교회가 그만큼 세속화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교회를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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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박해(사도행전12:1,2)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하여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교회가 한참 확장되고 있을 때, 박해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항상 이 일에는 헤롯가가 유대에서 앞장을 섰습니다. 헤롯은 신약성경에 네 명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사도시대에 유대에서 세력을 휘둘렀던 작자들입니다. 헤롯대왕(이두매의 Antipater/주전40년에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어 주전4년에 사망) 헤롯 안티파스, 헤롯 아그립바1세, 헤롯 아그립바Ⅱ세입니다. 이증에서 12:1의 헤롯은 헤롯아그립바I세입니다. 이 사람이 세베대의 아들 사도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투옥시켰습니다. 그러나 바로 54세의 나이로 가이사랴에서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이순교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1세는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유대인들이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헤롯 아그립바1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더 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형제인 사도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게 양면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주후64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313년까지 250년간 잔인하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황제에 의해서 시작된 1차 박해기간(64-96), 일부지역이나 어떤 지역에만 있었던 2차박해기간(98-249), 전국적인 박해기간(250-313)으로, 이 기간에 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1차 박해기간은 네로이전과 네로, 도미티안의 박해, 2차 박해기간은 트라얀의 박해, 하드리안의 박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박해, 3차 박해기간은 데시우스의 박해, 디오클레시안의 박해, 갈레리우스의 박해 등입니다. 박해기간에 엄청난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살을 찢었고, 인두로 지졌으며, 원형경기장에 넣고는 굶주린 맹수들을 풀어서 성도들을 잔인하게 잡아먹게 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즐겼습니다. 특히 로마의 황제들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잔인하게 성도들을 박해했습니다.

모든 박해의 배경에는 사단이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한참 복음이 번창일로에 있을 때 그 맥을 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세례요한, 예수님, 스데반, 사도야고보 등을 죽임으로써 더 이상 복음이 퍼지지 못하도록 진화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파죽지세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쓰나미처럼 밀고 나갔습니다.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복음의 길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죽이면 죽일수록 계속 두배 세배 늘어나면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에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박해는 계속되지만 결국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박해를 풀 사람을 보내시고 기독교를 장려할 사람을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들이 결코 하나님의 일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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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안디옥교회(사도행전11:27-30)

초대교회는 신약시대와 구약시대가 공존하는 시대였습니다. 사도들이 있었고,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예언의 은사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영감에 의하여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이때 사람들에게 임하는 은사는 방언의 은사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평상시의 언어로 표현했습니다(F.F.Bruce). 여기에서 나오는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빌립의 네 딸과 마찬가지로 앞을 내다보는 은사가 있었습니다(Calvin). 이러한 은사가 초대교회에 내려지는 이유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은사가 어느 정도 허용된 것입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갔습니다. 아마도 박해로 인해서 피하거나 안디옥교회가 새롭게 부상함으로 인해서 갔을 수도 있습니다.

아가보는 성령으로(dia; tou' pneuvmato"/diâ toȗ pneûmatos) 말했습니다. 아가보의 예언의 원천이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어떤 사람들의 말들은 자신의 소리들입니다. 우리나라는 천국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들이 말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정성이 없음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가보는 인간적인 방법에 의해서 추론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은밀한 영감에 의해서 하나님의 미리작정하심을 공표한 것입니다. 아가보는 ‘천하에 큰 기근이 들리라’였습니다. 이 기근은 클라우디우스(Klaudivou"/kllaudîous)때에(46-48년) 일어났습니다. 1

안디옥교회는 아가보 선지자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예언자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예언대로 팔레스타인 지방이 더 극심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를 돕기로 작정했습니다.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을 위해서 헌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예루살렘교회에 보냈습니다.

Calvin은 안디옥교회가 궁핍한 형제들에게 사랑의 의무를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본원지에 영예를 돌림으로써 복음에 대해 가지는 큰 가치성을 입증했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앞에서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교회의 임무이자 특권입니다. 이것을 잃으면 교호가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더는 교회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1 클라우디우스는 로마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1세(41-54년)이다. 드루수스(Drusus)와 안토니아(Antonia)의 아들이며, 디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조카이다. 그는 신체적으로 불구자였다. 지능이 약간 박약했기 때문에, 젊은 시절 디베리우스 황제 밑에서 격리된 생활을 했었다. 클라우디우스는 갈리굴라(Caligula)에 의해 37년에 집정관이 되었고 그 후에 기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여 황제가 되었다. 헤롯대왕의 손자 아그립바1세는 그를 도와서 황제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아그립바1세는 전 팔레스타인의 통치자가 되었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아그립바의 영향으로 종전까지 금했던 유대인의 종교 행위를 다시 인정하고 유대인의 관습과 전통에 대해 박해하지 않았다. 사도행전9:31에 보면 그는 통치 초기에는 유대인들에 우호적인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통치 말기에는 유대인들을 모두 로마에서 추방했다(행 18:2). 역사가들은 클라우디우스 통치기간에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하여 재난과 기근이 따랐다고 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후계자 문제로 그의 마지막 아내 아그립피나(Agrippina)에 의해 54년에 독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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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음(사도행전11:25-26)

안디옥에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큰 무리가 주께 더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바나바는 다소로 사울을 찾아 나섰습니다. 혼자서는 벅차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만난 바나바는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일 년간 같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이때 안디옥교회 밖에서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Cristianouv"/Christianoûs)이라는 말은 마치 하는 일들이 그리스도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와 동일시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크리스티아누스(그리스도인들)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제자, 믿는 자, 예수님의 추종자들이라고 불렸는데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는 것은 큰 은혜였습니다. 발전하는 그리스도교의 헬라적 환경에서 크리스토스가 고유명사의 의미를 취하게 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원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이방인들이 경멸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이름을 오하려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칼빈주의(Calvinism)라는 말도 원래 좋게 사용하지 않은 말입니다. Calvin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만든 말입니다. 그러나 후에 이 말은 개혁주의를 말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위그노(Huguenots)라는 盟友(맹우)라는 뜻입니다. 위그노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 것은 프랑스의 위그노들이 스위스와의 관계를 맹우라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프랑스의 위그노운동은 스위스의 제네바에 위치한 제네바신학원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위스를 사보이공국이 제네바시의 자치권을 박탈하려 했습니다. 이에 제네바시에 있는 프랑스의 개신교도들은 제네바시가 사보이공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열렬히 찬성했습니다. 그래서 위그노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이 말이 후에 프랑스의 개신교들에게도 확대적용했습니다. 아이드게노쎈(Eidgenossen)은 독일어로 역시 盟友(맹우)라는 말입니다. 1291년 스위스사람들이 오스트리아에 대항해서 독립전쟁을 할 때에 자기들을 아이드게노쎈이라고 불렀습니다. 영국의 청교도(Puritans)라는 말도 원래 경멸적인 말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39개조령을 발표했을 때, 카톨릭의 잔재제거, 즉 성직자의 제복착용금지, 오르간 연주, 세례줄 때 성호를 긋는 일, 성찬식때 무릎을 꿇는 것, 종교적 축일 및 휴일을 줄이고, 성화, 성상, 성유물숭배금지, 결혼식 때 반지사용금지, 주일날에는 음주금지, 극장구경금지, 도박금지, 승마금지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바리새인 같은 자들이라고 개신교를 청교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한 결 같이 영국국교회를 개혁코자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예수쟁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교회에 가는 사람들을 볼 때 예수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쟁이라고 불림을 받는 것.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림을 받는 것은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하는 행동이 예수님과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정도 예수님의 말씀과 같아야 하고, 결과도 예수님과 같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많은 욕이 예수님께 갑니다. 그러니까 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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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사도행전11:22-24)

사도들도 아니요, 집사도 아닌 사람들이 안디옥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마치 가기 싫은 니느웨에 갔을 때 역반응이 나타난 것처럼 안디옥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21절). 그 소문이 예루살렘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했습니다. 바나바가 도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안디옥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안디옥의 성도들에게 주님을 의지하고 꼭 붙어 있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더구나 바나바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안디옥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바나바(Barvâbas/바르나바스)는 구브로 출신인 레위인 요셉의 별명입니다. 그의 이름의 의미를 “권위 하는 자”라고 한 것은 “권위”가 예언의 중요한 기능이었기 때문입니다(행15:32, 고전14:3). 그리고 바나바는 권위 하는 사역에 종사했습니다(행4:36). 바나바는 공동체를 위해 자기재산을 팔아 바쳤던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 교인입니다(행4:36, 37).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행11:24). 바나바는 복음의 선교사입니다(행14:14). 바나바의 선교활동은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목회를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 앞에서 바울을 호의적으로 소개했습니다(행9:26,27).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 안디옥에 복음 전파자들의 선교를 지원하도록 보냄 받았습니다(행11:20 ,22). 바나바는 좋은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루가오니아 사람들은 바나바를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주피터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사도행전14:12). 이로보건데 바나바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였으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였습니다. 사람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바나바는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면에서 남들 보다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바나바는 누가가 말하기를 날 때부터 착했다고 했습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했습니다(행11:24). 그는 사랑이 충만했고, 동정심과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또한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유명한 목회자였습니다. 바나바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행11:25,26). 신뢰를 받았습니다(행 11:29,30). 전도에 몰두하면서(행13:2), 개종자들을 격려했습니다(행11:23).

오늘날 교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성도들입니다. 성령 충만하다고 해서 요새 성령주의자들의 충만 아닌 충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것을 말합니다. 정말 바른 사람들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러면서도 민첩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요새 성도들은 많이 세속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숲에 숨어 있으려고 합니다. 자신을 성도로서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개척교회는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뻔합니다. 사람의 숲이 없고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헌신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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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교회(사도행전11:20-21)

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들은 헬라파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전함을 받는 사람들 역시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 몇이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안디옥에 사는 많은 헬라인들에게 예수를 전파한 것입니다.

안디옥은 오론테스 강변의 도시입니다. 현재 터키 동남쪽의 안타카이입니다. 셀레우쿠스1세 니카토르가 주전300년경에 건설했습니다. 이곳에 항구인 셀레 우키아 피에리아가 있었습니다. 셀레우쿠스인들은 유대 이주자들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64년에 폼페이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폼페이는 인디옥을 자유로운 도시가 되게 했습니다. 안디옥은 웅장한 신전들과 다른 건물들을 가진 로마의 수리아속주의 수도이자 로마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안디옥의 거주민들은 여러 번 로마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킴으로서 정치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안디옥의 근교에는 다프네의 작은 숲과 아폴로 신전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주신제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은 후에 기독교의 시작과 밀접하게 되었습니다.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니골라가 안디옥 출신입니다(행6:5). 스데반의 순교 후에 있었던 핍박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일부가 이곳에 왔습니다(11:19). 그들은 안디옥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안디옥에 많은 회심자들이 생기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했습니다. 바나바는 사람들에게 확고한 신앙을 가지도록 권했습니다. 바나바는 혼자 안디옥에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갔습니다(11:22). 안디옥에서그리스도인(Cristianouv"/Christianoûs)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11:26). 안디옥교회는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에 부조를 보냈습니다(11:27-30). 최초로 이방에 선교를 시작한 교회였습니다(13:1-3). 그러나 어떤 유대 출신의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이방출신의 회심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선행조건으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 주장에 반대하는 안디옥교회는 이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바울과 바나바를 대표로 파송하였습니다(15장).

안디옥교회는 사도들이 가서 복음을 전한 교회가 아닙니다. 헬라파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복음이 유대인에게 좋은 것이라면 이방인들에게도 유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잘 받아들였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물론 안디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에게도 주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의 전도는 사실 특이했습니다. 처음 안디옥에 도착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 전도에만 힘썼습니다. 이때에는 부흥이 없었습니다. 후에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으로 예루살렘에 살다가 스데반 박해 때 흩어져 떠돌던 사람들도 안디옥에 왔는데 이들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때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성장의 근원에는 복음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차별 없이 전해졌던 비밀이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성장은 이방인에게도 차별 없이 복음이 전파되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을 섬길 때 큰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안디옥교회가 성장함에 있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오늘 많은 교회들이 안디옥교회의 모델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모델이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같이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실적위주의 선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동남아시아에 선교했네. 우리교회의 선교부가 아프리카에 선교부를 냈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쟁으로 선교하는 것, 지양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살리는 선교여야 합니다.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선교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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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이방교회/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사도행전11:19)

스데반의 일로 환난을 당한 성도들이 흩어졌습니다. 11:19은 8:4의 연결점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많은 성도들이 여기저기 흩어졌습니다. 박해의 결과로 흩어졌습니다. 박해의 결과로 예루살렘교회가 흩어졌습니다. 즉 교회가 흩어졌기 때문에 복음과 증거가 함께 흩어졌습니다.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의 일부는 페니키아(Phoenicia)해안을 따라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들이 찾아간 베니게(Foinivkh (phoinîkē/포이니케)는 사도시대에 수리아 영토의 한 지방이었습니다.

몇몇은 배를 타고서 구브로(Cyprus)로 갔습니다. ‘구브로’(Kuvpro")/Kûpros/퀴프로스)는 지중해에 있는 섬입니다. 구브로는 길리기아와 시리아 사이에 위치한 매우 비옥하고 쾌적한 섬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깃딤”으로(창10:4) 불렸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파송한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이 구브로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행13:4). 바나바는 제2차 전도여행 전날 밤에 마가 요한의 문제로 바울과 떨어져 마가와 함께 구브로를 방문했습니다(행15:39).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면서 배타고 구브로를 지나갔습니다(행21:3). 제4차 전도여행 초기에도 구브로 해안을 항해하여 지나갔습니다(행27:4).

예루살렘을 떠난 일부는 계속 해안을 따라서 안디옥(Antioch)에 이르렀습니다. ‘안디옥’(!Antiovceia)/Antiôcheia/안티오케이아)은 수리아의 안디옥이 있고, 비시디아의 안디옥이 있습니다(행13:14). 수리아의 안디옥은 셀류코스(Seleucus)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그의 부왕인 안티오쿠스(Antiochus)를 기념하여 명명되었습니다(주전300년). 안디옥은 주전64년에 폼페이에게 망하였고, 폼페이는 이 도시를 자유도시로 만들었습니다. 수리아 지방의 로마 수도가 되었으며, 제국의 제3의 대도시가 되었습니다. 안디옥에는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살았고 유대인들도 거기 살았습니다.

F. F. 브루스에 의하면 안디옥은 자유분방한 성도덕으로 유명하다고 했습니다. 그 원인은 5마일 떨어진 다프네에 있는 아르테미스와 아폴로 숭배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함께 벌어지는 음행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도시가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이 이방인기독교 중심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의 안디옥이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예루살렘교회일 수 있고, 이방의 모든 교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313년 콘스탄틴황제가 기독교를 공인 후에 예전과 건물에 신경을 썼듯이 현재 건물과 세속에 너무 물들어있지 않은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엎어진 한국교회의 위상 누가 세웁니까? 정부입니까? 각종 기독교단체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교회의 정체성을 세워야 합니다. 회개하고, 앞으로 나아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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