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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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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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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5.03.26
    사마리아전도/빌립

유대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사도행전10:34-43)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척이나 증오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 인측으로 볼 때 이방인보다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듯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에서 갈릴리를 가려면 사마리아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가깝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먼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사마리아는 통과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rm]vo/Shômerowm쇼므론)의 뜻은 ‘감시산’이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에 의해 동일 이름의 산(암6:1) 위에 건설된 도시입니다(왕상16:24). 에브라임 지파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왕국의 수도였으며 이스라엘의 왕들의 거처였습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왕 살만에셀Ⅳ에 의해 3년 동안 포위되었었습니다. 그 후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사르곤(Sargon)이 사마리아를 주전722년에 탈취하여 유린하였습니다. 이때 사르곤은 이스라엘의 10지파를 국외로 추방하고 그 자리를 다른 이주자들로 채웠습니다(왕하 17:5,24, 18:9). 따라서 사마리아는 순수한 유대인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혼혈인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정통유대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무척이나 혐오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대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간 베드로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과의 막힌 담을 허무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접근하는 것은 파격이었습니다. 사실 누가도 이방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34). 어떤 나라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했습니다(35). 주님으로 인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36). 갈릴리에서 시작된 복음이 유대에 퍼져나간 것을 봐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때 성령을 기름 붓듯이 부으셔서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쳤습니다.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결국 부활하신 예수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죄를 용서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지상에서 최상의 상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상품은 전할 때 받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그 선물을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절은 자유지만, 그 결과는 옵션이 아닙니다. 그 선물은 성령과 함께 주어집니다. 성령괴 함께 갑니다. 이미 유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받았습니다. 에디오피아 사람도 받았습니다. 다메섹사람들도 받았습니다. 이제 고넬료 같은 이방인들도 받았습니다. 이제 복음은 범세계적이었습니다. 거침없이 복음은 전해졌습니다. 마치 바람이 불듯 복음은 전해졌습니다.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지옥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가정이 건짐을 받고 지역이 건짐을 받았습니다. 국가가 건짐을 받았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전해졌습니다. 다시 하늘로 가서 살아야 할 놀라운 상품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사도들이 이방에 그 선물은 전해졌습니다.

And

베드로를 기다리는 고넬료의 자세(사도행전10:24-33)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막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인과의 교제를 막으셨습니까?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베드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보고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고넬료를 만나고서 확실해졌습니다.

고넬료는 전술한 바와 같이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고넬료를 칭찬합니다. 고넬료는 성령의 말씀을 듣고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도착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집안의 하인 둘과 경건한 부하 중에 경건한 사람 하나를 보냈습니다(7절). 베드로가 오는 사이에 고넬료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습니다. 심지어는 베드로가 들어오니까 그의 발 앞에 절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바로 저지했습니다. 그만큼 고넬료는 경건하여 유대인들보다 더욱 하나님의 백성다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덕목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사무엘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물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신13:4, 삼상28:18), 주의 명령과 경계의 말씀입니다(느9:34, 신30:8).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롬6:17,19). 마음과 성품을 다해야 하며(신26:16, 30:2,10).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민32:11,12,신1:36). 하나님께서 명한대로 순종해야 합니다(왕상9:4,11:38). 즐겨 순종해야 합니다(사1:19).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롬 6:17, 엡6:5).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합니다(고후2:9, 골3:20).

하나님께 우리가 왜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손과 땅의 복을 받으며(창26:4,5),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신30:2,3),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약1:25). 그리스도 사랑 안에 거합니다(요15:10).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출19:5,6), 자손까지 복을 받습니다(신5:29).

우리는 하루 중에 수십 가지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의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날마다 벗어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지나갑니다. 어쩌면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행동입니다.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고넬료는 지배국의 군인으로서 피지배국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들을 고넬료는 해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이래서 중요합니다.

And

룻다와 사론에 이른 주님의 복음(사도행전9:32-35)

‘룻다’는 사론평야에 있는 마을입니다. ‘룻다’는 후에 Diospolis로 불렸습니다. 룻다는 쾌적한 유명한 도시로 지중해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위치했습니다. 그 근방에는 바위가 많았지만 욥바(Joppa)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는 큰 암석위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현재는 Japhet(야펫)이라고 부르는 항구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8:25에서 요한과 함께 사마리아에서 돌아온 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복음의 위력만큼 대단한 힘을 가진 사상은 없습니다. 이제 복음은 얼마 되지 않아 서부 팔레스틴 지역에 이미 도달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박해 때에 피하여 도망 온 사람들이 이곳에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룻다에 애니아라 하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니아가 중풍으로 8년이나 침상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데 8년이나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Aijneva, ija'taiv se jIhsou'" Cristov": ajnavsthqi kai; strw'son seautw'/.

아이네아 이아타이 세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아나스테싸이 카이 스트로손 세안토

베드로는 8년간을 침상에 누워있는 애니아에게 말놀이(word-play)를 합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는 것입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베드로가 한 말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자신이 한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서기전까지는 기적을 베풀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을 의존하는데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베드로는 생각 없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애니아는 그 말에 바로 반응을 했습니다. 곧 일어났습니다(eujqevw" ajnevsth/에우쎄오스 아네스테/곧 그녀가 일어났다.). 베드로는 말했고, 애니아는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병이 나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룻다와 사론에 있는 사람들이 주께로 더 돌아 왔습니다. 이 일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날 첨단의 무기들이 가공할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무기들이 마하(음속)이상의 속도로 어떤 지역을 초토화할 만큼의 위력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국가를 지키기위해 만든 무기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보다 더 큰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하가 아니라 빛의 속도로, 어떤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복음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지,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살리는 핵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교회는 성도들입니다. 건물이 아니고.

And

유대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사도행전9:19-22)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신이 났었을 것입니다. 보기 싫은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체포해서 본국으로 송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정통유대인으로 각광을 받고, 촉망을 받는 인물이라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그렇게 살아왔고, 다메섹에 그러한 이유로 왔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에 있는 유대들은 아직 사울의 상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사흘이나 식음을 전폐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성령과 아나니아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점점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날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각 회당을 다니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습니다. 사울의 이 말은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말이요, 인정하기 싫은 말입니다. 따라서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22절을 보면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이 말하는 것에 대해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데, 이 사람이 사울이 맞아? 다메섹에 온 이유가 뭐야, 저들을 잡아가려고 오지 않았나?’ 주님께 잡힌 사울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울은 자신을 부른 주님의 이름을 힘있게 전파했습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다메섹에서는 사울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정작 도착해서 하는 말이 예수는 그리스도라(메시아) 전파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과 달리 교회는 이로써 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교회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主(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크고 작음이 없이 모두 교회입니다. 사실 사람들보기에 크고 작은 것이지, 교회는 대소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교회자랑이 아닙니다. 교회표어의 자랑이 아닙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다’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축복, 복이 교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보여지는 물질의 복이 전부였다면, 열 두 제자들은 최고로 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도 부자가 없었고, 모두 순교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님의 제자들을 복된 자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계속 전파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 사울이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 우리들이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 교회를 이 땅에 세우셨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 오늘 우리들을 이 땅에 존재케 하십니다. 우리를 반대하든지 안하든지, 어디에서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끝 날까지.

 

 

 

 

 

 

 

 

 

 

And

바울의 사도직(사도행전9:10-18)

바울사도의 사도직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서신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자신을 사도라고 말한 서신들은

로마서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고린도전서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후서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갈라디아서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서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골로새서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디모데전서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디모데후서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디도서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바울사도가 자신을 사도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서신들은 이렇습니다.

빌립보서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데살로니가전서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데살로니가후서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빌레몬서1: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등은 사도라고 했고,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등은 사도직에 대해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로마교회,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 에베소교회, 골로새교회, 디모데, 디도’에게는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변증을 하려 했을 것입니다. 곧 사도로 인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물론 디모데나 디도에게는 그들을 교회의 책임자로 세우면서 사도가 세웠음을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빌레몬’에게는 굳이 사도직에 대해서 변증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사도로서 자격을 부여받은 근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영원토록 살아계신 주님을 실제로 보았습니다(고전9:1,15:8).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고 했던 그가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And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사도행전9:10-18)

다메섹은Damaskov"(다마스코스)은 시리아의 아주 오래된(창14:15)도시입니다. 당시만 해도 상당히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현재도 시리아의 수도로서 약600만명이되는 큰 도시입니다. 유대인들과 시리아는 역사적으로 많은 마찰이 있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해서 시리아의 다메섹까지 성도들이 피하며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아나니아는 다메섹에 있던 제자였습니다. 아나니아에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직가라는 거리의 유다집에서 다소사람 사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가 기도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기도중에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보게 될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사울에 대해서 들은 정보를 말했습니다. 즉 성도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시리아에 온 것도 주의 성도를 체포하러 온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지금 네가 알고 있는 사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신 나의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해서 많은 해를 당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에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유다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안수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형제라 불렀습니다. 네가 다메섹으로 오던 길에서 만났던 주께서 나를 보내셨다. 예수께서 나를 보내시어 너로 다시 보게 하셨다. 성령으로 너를 충만하게 하신다고 하면서 사울에게 안수를 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울의 회심은 극적입니다. 가말리엘로부터 철저한 유대의 교육을 받아 누구도 그를 주의 제자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런그에게 주님께서는 스데반의 순교를 목도하게 하시고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조직적으로 하려는 그를 불러서 엎드리게 하시고 다메섹의 유다, 아나니아를 통해서 사울을 회심하게 했습니다. 사울은 이제 비로소 주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절을 보면 ‘주의 제자’(tou;" maqhta;" tou' kurivou/투스 마쎄타스 투 퀴리우), ‘그 도를 좇는 사람들’(tina" th'" oJdou' o[nta"/티나스 테스 호두 온타스/2절), ‘주의 성도(들)’(toi'" aJgivoi" sou/토이스 하기오이스 수/13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tou;" ejpikaloumevnou" to; o[nomav sou/투스 에피칼루메누스 토 오노마 수/14절) 대열에 사울도 서게 되었습니다.

아나니아는 신실한 주의 사람인 다메섹사람입니다(행22:12). 사울을 바울되게 한 사람 중에 아나니아는 사울의 회심이야기에서 잠깐 나왔다가 사라집니다. 사울을 첫형제로서 환영해준 첫 기독교인입니다. 주의 사명을 사울에게 충실히 전해 준 사람으로서 결코 작지 않은 사명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어떻습니까? 큰 교회들의 목회자들과 작은 교회목회자들을 과연 같이 취급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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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성직매매의 위험성(사도행전8:18-25)

성령의 능력을 영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 받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성령의 능력은 예루살렘에서만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성경을 잘못 본 것입니다. 시몬은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인해서 성령이 강림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자신도 그러한 능력을 행할 수 있도록 부탁한 것입니다.

시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시몬은 생각하기를 그러한 표적들이 자신의 손을 얹음으로서 일어난다면 쿤 권위와 특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몬이 생각하기를 베드로와 요한이 특수한 은사를 받아서 종교적인 마술을 파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Simon의 이러한 생각 때문에 성직매매를 의미하는 ‘simony’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사람들이 소유할 때는 보이는 것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음’으로 무엇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시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보았다고 하면, 그것에 기독교인들이 정신에 팔립니다. 너도나도 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몇 년 치의 간증시간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고, 사람들의 말은 들을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보편적인 분이십니다. 지구상의 몇 명에게만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불러 모으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주셨습니다. 그러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은혜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런 은사와 그 능력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 그것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사도들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파멸당하라고 했습니다. 주를 믿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악하다고 했습니다. 즉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성직매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 교회가 너무 시끄럽습니다. 전 세계의 교회들이 그다지 평온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파괴하려는 악한 세력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당회라는 이름으로, 총회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역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직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담즙이며, 불의에 매인바 된 것입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이는 것,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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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전도/빌립(사도행전8:5-8)

죄는 에덴에서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에덴에서 저질러졌던 죄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입니다. 그 죄를 없이하고자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대속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대신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 복음은 예수님의 당부대로 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 끝까지 전해져야 했습니다.

복음은 진행 중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유대로, 사마리아로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마리아에 빌립이 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Samavreia/Samaria)는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에 의해 동일 이름의 산( 암6:1) 위에 건설된 도시입니다(왕상16:24). 에브라임 지파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그 전체 지역의 수도였으며 이스라엘의 왕들의 거처였습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왕 살만에셀Ⅳ에 의해 3년 동안 포위되었었습니다. 그후 그아들 사르곤(Sargon)이 사마리아를 주전722년에 탈취하여 유린하였습니다. 이때 Sargon은 이스라엘의 10지파를 국외로 추방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 하고 다른 이주자들로 채웠습니다(왕하17:5,24, 18:9. 복구 후에 사마리아는 유대인 군주이자 대 제사장인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오랜 후에 사마리아는 다시 한 번 재건되었고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 의해 헤롯(대왕)에게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마치 죄인들의 나라로 취급했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로 통과하면 가까운 거리인데도 일부러 멀리 돌아서 가곤했습니다. 따라서 사마리아는 같은 팔레스타인이라도 유대인들의 대접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격리된 지역이었습니다. 분열된 상태에서 몇 번 화해의 시도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하고 분열의 골이 깊어만 갔습니다. 갈수록 불화의 골은 깊어만 갔습니다.

이런 사마리아에 빌립이 복음을 전한 것은 대담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사람들도 메시야의 임재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요4:25).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의 말을 듣고, 행하는 표적을 보고, 일심으로 빌립의 말을 좇았습니다. 그 결과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더러운 귀신들이 나가고, 많은 병자들이 나았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누가는 기록했습니다. 과거에는 예수님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을 사도가 아닌 집사가 복음을 전했을 때, 사마리아에 복음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불모지였던 사마리아가 주님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유대의 종교지도들보다 더 위대한 성이 된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더불어 따라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화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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