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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사도행전8:1-3)

1절a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1절b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 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의 교회에 대한 핍박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우선 스데반이 죽어서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유대교를 배반하는 사람들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국법을 어기고 종교법을 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죽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날부터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유대인들은 마치 이리떼 같았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입니다. 성도들을 보는 족족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이 기회에 그리스도인들을 없이하지 못하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하여 혹독하게 박해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여러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핍박을 피해 흩어졌습니다. 일부 성도들이 스데반을 장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크게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신명이 났습니다. 아예 교회자체를 없이하려 했습니다. 사울이 회심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살기등등했습니다. 자신이 믿는 도가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없이하고자 한 것입니다. 후에 바울사도는 그런 자신을 회상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1: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디모데전서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 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주님께서는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십자가죽음이 사단을 궤멸시킨다는 것을 사단이 알았다면, 절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자신들이 100%승리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사단의 나라는 궤멸되고, 유대인들은 엄청난 재해를 당했습니다. 스데반을 기세등등하게 죽인 산헤드린은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 선두에 사울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오랜만에 사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의 도를 선동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듯했고, 선봉에 서는 사람들은 감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反轉(반전)을 몰랐습니다. 타고 있는 불에 기름을 붓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으로 가고 있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기독교가 땅 끝까지 전파되도록 기여했습니다. 그들의 심한 박해로. 그들의 잘못된 종교관으로, 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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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등장(사도행전7:58)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흔히 사울의 뜻은 위대하고 바울은 작은 자라고 해서, 그 근거를 그리스도를 만나기전에는 사울, 만난 후에는 바울이라고 하는데, 성경에 그런 근거는 없습니다. 사울(lWav;/Shâ’ûwl/간구된)이라는 이름은 유대식 이름입니다. 사울의 헬라어음역은 사울로스(Sau'lo")입니다. 그의 다른 이름은 바울입니다. Pau'lo"(파울로스)는 라틴어 파울루스(Paulus)에서 유래한 헬라어 음역입니다. 여기에서 ‘작은’이란 말이 유래했지만, 성경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리기아의 다소에서 났습니다(행9:11,21:39,22:3). 유대인 양친에게서 태어났습니다(빌3:5). 그의 부친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행23:6). 로마의 시민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출생 때부터 로마시민이었습니다(행22:28,16:37). 그는 천막 만드는 일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청년기 초에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인 가말리엘에게서 유대신학을 철저히 교수 받았습니다(행22:3 ,5:34). 바울사도는 스데반의 순교를 마땅하다고 생각할 만큼 유대신학에 미쳐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악하게 공격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리스도께로 개종하였습니다. 이후 지칠 줄 모르고 굽힐 줄 모르는, 그리스도의 전파자요 많은 그리스도 교회의 설립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열심과 교리로 그는 스스로 유대인들의 불구대천적 증오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되고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로 호송되었다가, 2년 후에 로마로 보내졌습니다.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바울사도의 등장은 악인으로 등장합니다. 기독교인들을 잔해하려고 날뛰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많았습니다. 수리아지방에 있는 기독교인들까지 잔해하려고 하는 선봉에 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의 등장은 기독교회사에 거대한 획을 긋게 됩니다. R. E. D. White는 바울사도를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 가장 심오한 교사, 가장 충실한 친구, 가장 용맹스런 모험과 불굴의 수난자, 가장 눈길을 끄는 성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병사요, 종이요, 그를 사랑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의 개종은 급격하고, 극적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기독교를 히브리사람들만의 종교가 아니라 세계종교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전 세계를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바울사도가 전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유대인과 로마인과 환경들의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죽는 날까지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후에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대열에 자신도 함께 하고 평생을 주님과 동행했던 그 결과 오늘날 전 세계에 복음이 가일층 순조롭게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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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스데반(사도행전7:60)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7:60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다니엘12:2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데살로니가전서 4:13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데살로니가전서4:14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4:15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린도전서15:18

…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15:20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마태복음27:52".

잔다는 말은 통상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모든 행동들을 멈추고 육신적인 몸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눈이 감긴 채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를 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8시간이내의 수면에 빠집니다. 물론 그 이상을 자는 사람도 있고 그 이하의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잠을 잡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위의 성경구절들은 ‘잔다’고 하면서 우리의 ‘잠’과는 다른 의미의 잠을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잠을 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잠과 죽음사이가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부름 받을 사람과 이미 “잠든 사람”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복음11장을 보면 나사로의 죽음을 맞습니다. 그 동생들 마라아와 마르다는 무척이나 슬펐습니다. 예수님께 나사로가 아프다고 기별을 했는데 나사로가 죽은 후에 도착한 것입니다. 분명히 죽기 전에 오셔야 할 예수께서 늦게 오신 것입니다. 이점이 마리아자매에게 야속했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아프다고 기별했으면, 만사를 제치고 오셔서 죽지 않도록 해주셔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러셨습니다. 나사로의 기별을 듣고도 일부러 죽은 후에 가셨습니다. 나사로의 가족들과의 친분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예수님이 일부러 늑장을 부렸습니까? 왜 나사로가 죽은 후에 도착했습니까? 전능하신 주님의 손길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슬픔에 젖어서 예수님을 원망하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네 오라비가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요11:44).

신자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몸의 부활로 말미암아 영화롭게 된 상태에서 양자삼으심의 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충만히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즉 몸이 부활이 됩니다. 어떤 상태로 죽었든지, 시공간을 초월해서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었을지라도 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되고(살후2:14),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습니다(롬8:17). 이것은 신자의 특권입니다. 신자들만 부활해서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들이 지독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당당했던 것은 바로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잔다는 것은 곧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곧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죽음입니다. 죽어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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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배역했던 이스라엘(사도행전7:51-53)

이스라엘의 6일 전쟁(Six-Day War)이라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은 1967년 1967년6월5일-1967년6월10일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사이에 발생하여 6일 만에 종결된 전쟁입니다. 한마디로 이 전쟁은 말이 되지 않는 전쟁입니다. 6월5일/이스라엘의 이집트 공격, 6월6일/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장악, 6월7일/통곡의 벽(Waling Wall)과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점령, 6월8일/이스라엘의 이집트군 완전 격멸(시나이반도 점령), 6월9일/이스라엘 골란고원(Golan heights)점령, 6월10일/전쟁 종료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전쟁결과 이스라엘 참전군 26만4000명 중 사상자 779명,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및 다른 아랍국가 참전군 30만 명중 사상자 2만 명입니다.

이후로 지구촌은 이스라엘의 정신을 본받고자 애를 썼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스라엘의 정신을 본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교회 밖에서 이스라엘의 정신을 본받자고 한다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교회가 현재의 이스라엘을 본받자고 한다면 틀린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은 사람들이 본받을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시대 이후로 그들은 교만했습니다(목이 곧고). 여호와의 신앙을 철저하게 거부했습니다(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 항상 성령에 맞섰습니다(항상 성령을 거스려). 선지자들을 핍박했습니다. 의인들을 죽였습니다. 살인자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았습니다. 광야시대, 가나안정복시대, 왕정시대, 포로 귀환시대, 예수님시대를 막론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스라엘을 본받을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수많은 것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교회가 肥大(비대)해지다보니까 기업경영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교회가 경쟁을 하다보니까 弱肉强食(약육강식)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로 인해서 교회에 양극화현상이 뚜렷합니다. 교회의 양극화현상은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복음이 복음답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약한 교회에서 애써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경제력이 탄탄한 교회에서 훼방을 놓습니다. ‘저 교회보다 우리교회는 주는 것이 많아’라는 선물공세에서부터 시작해서 각종 불합리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교회가 혹시 이스라엘처럼 배역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배역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면서 혹시 스데반 같은 성도를 돌로 치지 않을까 생각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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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박해하는 재판장들(사도행전7:1)

재판관이 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裁判席(재판석)에 앉아서 사람들을 심판하는 예가 허다합니다. 재판이란 공의를 행하는 것인데, 재판으로 불의를 행하였던 것이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습니다. 히틀러의 유대인재판, 각국의 혁명재판, 쿠데타의 군사재판 등은 공의와 정의가 사라진 재판입니다. 재판이라는 要式(요식)을 갖추려는 것뿐 오히려 재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행위입니다. 1절에 ‘이것이 사실이냐?’의 대제사장의 질문이 그와 같습니다. 이 사람은 가야바입니다. 예수님을 재판한 불법재판관입니다. 소위 이스라엘 최고법정의 수장으로서 자리 값을 못한 사람입니다.

가야바는 주후18년에 유대총독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에 의해 최고 제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가야바는 빌라도가 총독으로 있었을 때 10년을 포함 18년을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수리아의 총독이었던 비텔리우스가 36년 빌라도를 소환코자 유대에 왔을 때, 가야바도 해임되었습니다. 그 대신에 안나스의 아들 요나단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가야바는 안나스의 사위로서(요18:13) 세례요한의 선교 시작 전부터 사도행전 초기 박해시대 동안의 대제사장직을 해먹었습니다(눅3:2, 행4:6,7). 가야바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을 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요11:49-52). 그러나 이 말은 그 해에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이 말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오히려 더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기 때문입니다(요11:53).

가야바는 즉 당시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대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사단에게 속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모의 헸을 때, 진위여부도 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앞장을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잡히시던 밤에 대제사장 가야바의 아문(뜰)에 모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했습니다(마26:3-5).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써 바른 직분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거짓증인을 세워 예수님을 죽였습니다(마26:59). 사도들에게도 가야바의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가야바 앞에 수시로 고발을 당했습니다(행4:1-8). 이제 가야바는 스데반에게도 같은 방법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대체적으로 순탄하게 전해집니다. 약간의 어려움은 있지만, 순탄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 종교들이 어떤 진리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우상들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은 신들을 섬기면, 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이 신과 저 신들을 합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와 종교 간에 부딪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전하는 우리들은 다릅니다. 오직 하나님은 한분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부딪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군왕들과 종교들은 늘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자신들의 종교권과 왕권이 위태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역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들의 이권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단은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박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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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일곱 집사(사도행전6:1-6)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는 명실공이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로 추천되었습니다.

스데반(Stevfano"/스테파노스/Stephen)은 ‘면류관’을 의미하며,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예루살렘의 최초의 집사로서 첫 번째 순교자입니다. 스데반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어 능력 있는 설교자이기도 했습니다. 스데반은 신앙이 돈독했으며, 은혜가 충만하고, 능력 또한 많았으며, 성경이 해박했습니다. 지혜가 풍부하고 용기가 넘쳤으며, 사랑이 많은 자였습니다.

빌립(Fivlippo"/필립포스/philip)은 ‘말(horse)을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빌립은 일곱 집사였지만 스데반이 순교한 후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효과적인 치유역사를 행했으며(행8:4-8), 마술사 시몬을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유대교로 개종한 에디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행8:26-39). 그리하여 에디오피아인으로 인하여 북동 아프리카 지역에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빌립에게는 그리스도인 여선지자인 결혼하지 않은 네 딸이 있었습니다(행21:9).

브로고로(Provcoro" /프로코로스/Prochorus)는 ‘춤의 지도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니코메디아(Nicomedia)의 감독이 되었으며, 사도요한의 대필자이기도 했으며, 안디옥에서 순교했다고 전합니다.

니가노르(Nikavnwr/니카노르/Nicanor)는 ‘정복자’를 의미하며, 안디옥 출신입니다.

디몬(Tivmwn/티몬/Timon)은 ‘존경해야 함’을 '을 의미합니다.

바메나(Parmena'"/파르메나스/Parmenast) 역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니골라(Nikovlao"/니콜라오스)는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마침내 기독교에 개종한 이방인이었습니다. 니골라는 교회 교부들에 의해서 니골라당으로 알려진 이단 종파의 창시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교부 이레네우스 시대부터 니골라가 니골라당의 창시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니골라인지 동명이인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이상과 같이 초대교회의 집사들은 모두 헬라식의 이름을 가진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히브리파, 헬라파를 구분해서 분배를 할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사도 앞에 세웠’습니다. 이들은 사도들을 돕는 자이지, 사도들의 대적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세웠습니다. 이들은 모두 충성스러웠습니다. 이 중에서 스데반과 빌립의 행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통상 생각하는 것처럼 헌금(재정)만 분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이들을 세움으로써 불평은 사라졌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전하는 것을 전무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앞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일꾼들이 잘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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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문제들(사도행전6:1-6)

초대교회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를 겪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외국어로 말했습니다. 때마침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 무슨 일이냐?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베드로의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 너희들이 시시하게 생각했던 예수, 너희들이 그를 하나의 선지자로 간주했던 예수가 지금 너희들이 보이는 이적을 행하게 하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갑자기 예루살렘교회가 성도들이 많아졌습니다. 성도들이 많아지는 것을 본 예루살렘의 실권자들은 몹시 배가 아팠습니다.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의 道(도)가 퍼져나가는 것이 눈에 가시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일 수도 없었고, 그대로 둘 수도 없었습니다. 거기에 가말리엘의 권고를 듣고 보니 더더욱 사도들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 문제를 겪고 난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로 인하여 공격을 받았습니다. 종교권자들의 박해는 외적인 것에 비하여 내적인 공격이었습니다. 어떻게든 교회의 전진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문제도 성령의 은혜로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러자 또 종교권자들이 교회에 도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붉어졌습니다. 내적인 문제였습니다.

1절을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교회가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내놓은 재산으로 구제를 했습니다. 이때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소외되었습니다. 사람들보기에 히브리파 과부들은 더 가져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불평(goggusmov")이 잦아졌습니다. 교회의 재산은 어떤 개인의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쪽에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매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망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한쪽으로 잔뜩 기울어져 있습니다. 성도라고 부르기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멈추어 있습니다. 더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숲에 숨어 있으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신자’라는 이름만 있을 뿐입니다. 큰 교회에서는 서로 직분을 받으려고 합니다. 작은 교회에서는 직분을 주려고 해도 줄 사람이 없습니다. 큰 교회에서는 남아도는 신자들이 작은 교회에는 없습니다. 매우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교회의 양극화, 기울어져 있는 교회의 문제들, 누구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노회도, 총회도 절대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성도들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교회가 각성해야 합니다. 요새 서울의 ○○교회가 와해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런 교회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집니다. 그러다 일이 터지면 홍수 난 것처럼 초토화되어버립니다. 성도들이 각성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각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들을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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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앞에 사도들을 세운 제사장들(사도행전5:17-32)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27)

재판이라는 것은 항상 공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법이라는 잣대로 사람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판이 공정해야 그 사회가 의로운 사회가 바른 국가가 형성이 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재판을 보면 공정한 재판이 있었겠지만, 많은 사건들이 불공정한 재판으로 억울한 일들을 당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종교제판, 군사재판, 혁명재판, 그리고 편향된 재판 등이 그 예입니다. 이러한 재판들은 정부에 유리하게 법해석을 하기 때문에 재판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종교의 옷을 입거나, 민주라는 옷을 입고 사람을 재판하여 죽였었습니다. 그래서 도덕적인 나라, 바른 국가를 사람들이 열망하는 것입니다. 모두다 수긍이 되는 법의 수호를 받을 권리, 옳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많은 재판들이 의롭지 못한 예가 허다합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랬습니다. 미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예루살렘의 치안을 맡은 자가 하속들과 같이 사도들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강제로 어떻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사도들을 잡아가는데 가만히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은 곧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사도들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살기등등한 이 패거리들은 사도들을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심문을 합니다. 우리가 이(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누차 이야기 했는데, 도대체 너희가 어떻게 하려고, 너희의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느냐? 이(그리스도)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냐?

사람들이 원래 진짜를 취급할 때 진짜일 때는 신경을 별로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짜일 때는 진짜 흉내를 냅니다. 사람들이 가짜로 생각할까봐 더 진짜 흉내를 냅니다. 진짜로 참기름을 팔면 ‘참 기름집’이라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곳에서 파는 참기름이 있는데, ‘진짜 순 참 기름집’이라고 했는데, 가짜였습니다. 기름에 수식어가 몇 개 붙어 있습니까? ‘진짜’‘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우리사회에는 가짜들이 항상 판을 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나 사두개인들, 서기관들이 정말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다면 이런 짓거리들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청하고, 날 때부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들던 이들은 실상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관계가 있었다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관계였고, 하나님의 일을 막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예루살렘 정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잘못된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이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의 곳인 지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하면서도 때로는 대제사장처럼, 때로는 사두개인처럼, 그리고 공회처럼 횡포를 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만한 권력이주어진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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