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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난을 예고하시는 성령님(사도행전21:7-14)
바울일행은 두로에서 수로를 따라 돌레마이에 이르렀습니다. 돌레마이(Ptolemai?"/ptollemaîs)는 사사기1:31 에 나오는 “악고”와 같은 마을입니다. 돌레마이는 Machabee家) 시대에 페니키아 연안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마을입니다. 돌레마이에서 형제들의 안부를 물은 후에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가이사랴 Kaisavreia/Kaisâreia 는 항구도시입니다. 가이사랴는 욥바와 도라 사이 스타토의 탑(Stato's Tower)이 있던 곳에 헤롯대왕이 건설했습니다. 가이사랴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였으며, 좋은 항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를 경하하는 뜻에서 '가이사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습니다. 이곳은 로마 행정장관들의 거주지였으며, 주민의 대다수는 헬라인들이었습니다. 이곳은 유대지방에 있는 로마식 도시였으며, 헤롯 계열의 왕들과 로마의 지방 총독들의 관저(官邸)가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의 고향이었습니다. 바울일행은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쉬었습니다. 빌립에게는 딸이 넷이나 되었습니다. 처녀로 예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빌립의 집에 여러 날을 보내고 있을 때, 아가보라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왔습니다.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이 띠 임자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묶어서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바울과 함께 하는 일행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일행들은 바울사도가 권함을 받지 않음으로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성령의 감동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19: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0:22-24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1:11-13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하지만 바울은 예루살렘과 로마로 갈 것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아직도 유대기독교와 이방기독교간의 마찰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연합을 도모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Roma행은 세계의 중심인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누가 복음의 진보를 막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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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사도행전21:1-6)
바울사도는 밀레도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바로 출발하여 고스(Cos/헬리가니소스 근처 소아시아 남서쪽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이 많은 섬으로 주전5세기에 히포크라테스/Hippokratēs가 이곳에 의술학교를 세움)로 갔습니다. 다음날에 로도(Rhodes/크레테와 소아시아 서남단 사이에 위치한 큰섬으로 당시에 이곳은 여가를 즐기고 학식을 나누는 유흥지임)를 거쳐 바다라(Patara/소아시아 남부 루기아의 항구도시로 바람이 순조롭기 때문에 페니키아로 가는 배를 타기에 적절한 곳)로 갔습니다. Patara에서 페니키아(Phoenicia)로 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Cyprus/구약성경에서 ‘깃딤’(창10:4, 민24:24, 사23:1)으로 불렸던 구브로는 지중해의 매우 비옥하고 쾌적한 섬으로서 길리기아와 시리아 사이에 위치)를 바라보며 Syria(수리아는 북쪽으로 타우루스 및 아마누스 지역과 접하며 동으로 유브라데와 아라비아, 남으로 팔레스틴, 서로 페니키아 및 지중해와 접경을 이룬다. 시리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주로 ‘아람’으로 언급됨)로 가다가 두로(Tyre)에서 상륙했습니다. 두로에는 이미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제자들을 찾아서 7일을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성령에 감동되었습니다.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성도들이 성문 밖 바닷가에까지 나와서 전송할 때 역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가이사랴에 가기위하여 배에 올랐습니다. 바울사도는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갔습니다. 한 성령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가지 말라고 하고 바울사도는 가겠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Calvin은 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말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그분께서 승인하셔서 바울로 하여금 자기들이 예언의 영에 의해 말하고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 행을 중단할 경우 얼마든지 개인적인 안전을 스스로 깊이 꾀할 수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중단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Matthew Henry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려고 하면서 그 사건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건 전에 많은 예언을 함이 적합하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의 신앙을 해치는 대신에 그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F. F. Bruce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예언을 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큰 위험이 바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굳게 결심한 바가 있어서 전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최순봉은 바울은 그들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권고를 다시 한 번 받는다. 그러나 누가는 이에 대한 바울의 반응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 일행은 마치 아무 말도 들은 적이 없는 것과 같이 그 장소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Thompson Bible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안 제자들이 바울의 안위를 염려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예루살렘 행은 Roma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Roma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설령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도, 복음을 사랑하고 전하고자 하는 passion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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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감독들(사도행전20:36-38)
헤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더구나 좋은 사람을 이 세상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어릴 적에 좋은 선생님은 빨리 갔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바울사도와 에베소의 장로들은 바울의 말이 끝나자 함께 무릎을 꿇고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 크게 울었습니다. 바울의 목을 안고 서러운 작별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시는 사도를 만날 수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의 장로들은 모두 배타는 곳까지 갔습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석별입니다. 36절은 눈물겨운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에베소서1:15-23 15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빌립보서1:3-11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7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8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골로새서1:3-14 3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5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 8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데살로니가전서1:2-3 2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교회의 최초 지도자는 사도들입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장로들”과 일곱 사람(행6장)의 도움을 입었습니다. 초기 수십 년 동안은 성령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교회의 두드러진 위치에 있었습니다. 선교사와 교사 그리고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공적인 임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폭 넓게 인정된 순회전도의 사역을 떠맡았습니다. 그러나 이 지도자들은 2세기 초에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Didachē에 따르면 어떤 지역에서는 선지자적인 교사들이 자리를 잡았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실속을 차렸으며 “감독과 집사들”은 새롭게 탁월한 위치를 얻었습니다. 선지자적 전통은 Ignatius와 Hermas와 Melito 그리고 Montanus파 같은 사람들과 더불어 계속되었습니다. Justin과 Alexandrinus의 Clemens와 Origenēs 그리고 Tertulliān 같은 자유계약의 교사와 철학자들이 여전히 존재하였습니다.
지역 교회 지도자들은 초기단계에 나타났습니다. “장로들”로 알려진 집단이 교인들의 삶을 지도하였습니다. rm들은 장로들이나 신앙의 아버지(유대교나 구약성경의 모델에 근거한) 혹은 “감독들”(보호자나 감독자)이었습니다. 목사, 목자, 교사, 집사 혹은 종, 다스리는 자 그리고 장(長) 같은 칭호들도 사용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직분의 위치와 역할은 여전히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 오늘날의 “목사”(the minister)에 해당되는 직분은 없었습니다. 교회는 적어도 3세기까지 가정을 기초로 한 작은 공동체로 모였습니다.
Ignatius 당시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3중의 사역”에 의해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감독(Ignatius는 그의 권위를 유일하신 하나님의 권위에 연결시켰음)과 장로들의 모임(사도들의 단결된 모임을 본받았음) 그리고 몇 사람의 집사들(그리스도처럼 섬기는 자들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3세기 전에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러나 Roma와 Greece의 교회들은 Ignatius 당시에 단 한 사람의 감독도 갖지 못했고,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도 180년까지 감독을 갖지 못했습니다. 감독 교구의 수는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달랐습니다. 소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작은 공동체들은 그들 자신의 감독을 가졌습니다. 다른 곳에서는(고울 지방) 큰 읍의 감독이 그 주변지역의 회중들을 감독하였습니다. 250년경 Roma의 교회에는 46명의 장로, 7명의 집사, 7명의 부집사. 42명의 시종(acolytes), 52명의 악령을 쫓는 자, 성경 낭독자, 문지기와 더불어 한 사람의 감독이 있었습니다.
감독은 점차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로 부상하였습니다. 그 요인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회중은 장로 혹은 감독들 중에서 주도권을 잡거나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성찬식을 집례하고, 다른 교회와 접촉하며, 가르치고, 교회의 재산과 헌물을 보호할 사람이 요구되었습니다. 1인 지도력은 특히 그가 연장된 기간 동안 한 곳에 머물렀을 때 기초를 닦은 사도나 선교사에 의해 수행된 역할들을 통해 시사되었습니다. 즉 디모데나 디도와 같은 사도의 대행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 겸 감독 겸 대사제(high-priest)였던 야고보에 의해 암시되었습니다. 그들의 기능 가운데 어떤 것은 계속 교회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출처:교회사핸드북, 초대교회사, 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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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한 이리들/마르키온주의(사도행전20:17-35)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29-30절)
Marcion은 흑해 폰투스의 Sinope에서 감독의 아들로 태어나 140년에 Roma 로 갔습니다. Roma에서 노스틱파 교사 Cerdo의 매력에 사로잡혔습니다. 케르도는 구약의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하나님)와 다르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구약의 신은 알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반면에 신약의 신은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르키온은 이 가르침의 주요한 대번자가 되었고 그 자신의 독특한 생각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왜곡된 기독교적 견해들은 로마의 교회에 의해 확고하게 거절당하였습니다. 144년 마르키온은 파문을 당하였습니다. 순교자 져스틴(Justin Martyr)은 마르키온이 마귀의 도움을 받아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며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주임을 부인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터툴리안은 207년 마르키온 이단 반박(Against Marcion)을 썼고 마르키온을 기독교교리의 무서운 적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마르키온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에 대한 케르도의 분리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구약의 신(神)은 기본적으로 복수심이 강하고 악을 만든 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로지 유대 민족에게만 관심을 가졌고, 유대민족을 위해 다른 모든 자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신약의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Marcion은 예수 그리스도가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했으며, 예수는 주후29년 갑자기 성인으로서 가버나움 회당에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의 외모 이외에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지상의 새로운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Marcion의 견해는 가현론자의 입장이었습니다. Marcion이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이 구원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의 인간적 경험과 고난이 단순히 가현적일뿐이지,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창조가 신약의 선한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영혼만이 구속을 받으므로 육체는 부인되고 포기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르키온은 육체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구약의 신은 유대인만 사랑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마르키온은 구약전체와 유대인 독자를 펀드는 신약의 책들(마태복음, 마가복음, 사도행전 그리고 히브리서)도 거절했습니다. 그는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을 포함하여 그의 견해를 타협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신약의 나머지 책들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는 단지 불완전한 누가복음(예수 탄생기사를 삭제)과 바울의 10개 서신만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는 바울이 예수의 복음을 그대로 보존시킨 유일한 사도라고 믿었습니다.
마르키온파는 정통적 회중을 본뜬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성직자와 의식의 규례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성찬식에서 포도주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금욕주의를 강조하기 때문에 포도주를 마실 수 없었습니다. Marcion파의 사상 가운데 일부는 다양한 영지주의자들에게로 스며들었습니다. 또한 Marcion파 자신이 노스틱파의 사상에 의해 영향을 입기도 했습니다.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의 사상은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 나가 아라비아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이집트까지 전파되었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수십 년 동안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마니교도와 연관되기 시작하면서 쇠퇴해졌습니다.
이단은 교회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아닙니다. 마귀들의 도구일뿐입니다. 세상도 아니고, 교회도 아닌 것 마귀의 도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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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한 이리들/영지주의(사도행전20:17-35)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29-30절)
영지주의는 1세기에 초대교회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이단들입니다. 영지주의/Gnosticism/Gnosis는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gnw'si"/gnȏsis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오늘날에 영지주의란 이원론과 비밀스런 지식의 소유를 강조하는 종교적인 신념을 일컫습니다. 이들은 소위 지식이 있다고 믿는 Hellenism 종교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영지주의에 대한 두 용어 Gnosis와 Gnosticism가 있는데, 2세기이후의 체계화된 영지주의를 말할 때는 Gnosticism, 체계화되기 이전의 시대까지 포함해서 폭넓은 범위를 말할때는 Gnosis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들의 기본신앙은 피조세계는 악하며,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광채 가운데 물질세계와는 관계없이 거하시는 지존하신 하나님이 계신 영적세계와 피조세계는 완전히 분리되며 배치된다는 것이 영지주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물질 세계는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인 데미우르고스(Dermiurgos)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는 부관 아르곤(Archons)과 더불어 인류를 육체에 감금시켰다고 합니다. 만일 신적섬광과 영혼을 소유한 사람들이 그노시스 즉 지식의 교회를 받아들이면, 그들만이 물질적 존재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영지주의 체계에서 이런 교화는, 영적세계에서 변장하고 내려온 신적 구원자의 사역에 속하였으며 이 신적 구원자는 예수그리스도와 동일시했습니다. 영지주의자는 이런 신화론적 구조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는데, 정신의학자 구스타프 융은 이러한 요인을 인식하고 고대 영지주의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자신의 이론을 심화시켰습니다.
영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을 평가절하 시켰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중요성을 부인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구원은 죄로부터 구출이라기보다는 자기실현에 달려 있었습니다(IVP 성경사전).
2세기 중엽은 영지주의의 시대였습니다. 135년 예루살렘의 2차함락, 193년 세베르 왕조의 즉위의 두 세대 동안에 교회는 점진적인 헬라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났던 이단 가운데 하나가 영지주의였습니다. 130년에서 180년 사이에 주로 Alexandria에서 활동하고 있던 교사들이 기독교의 지적생활을 지배하면서 그들의 영향력은 이탈리아, 로마, 소아시아, 심지어 론 벨리(Rhone Valley)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들은 실재에 대한 이원론적 해석과 금욕주의적 윤리, 그리스도에 대한 색다른 이해, 죽음의 망각으로부터 구원해주는 능력으로서 지식의 강조 등을 그 특징으로 했기 때문에 초대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Harnack은 성경이 영지주의 영향을 받아 “예수의 참된 가르침”과 헬라주의화 된 영지주의 사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찾기 위해 신학의 비신화화가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지주의가 2세기 동안 만만찮은 세력을 형성하였던 것은 기독교가 그 영향력을 증대시켜 나가면서 영지주의에 대한 헬라 지식인들의 관심이 점증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관한 문제, 그리스도-구세주에 관한 문제, 우주의 기원과 발달에 관한 문제 등은 그들이 해명하고자 하였던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영지주의적 특징을 반영하는 성경 귀절들이 여러 곳 나타납니다(골2:22-23).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강하게 일면서 건전한 기독교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2세기 초지만 이미 1세기 초부터 영지주의 경향들은 교회 내에 존재했습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마술사 시몬을 모든 이단의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1세기 말경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가르쳤던 메난더는 시몬의 추종자였습니다. 또한 Saturninus, Cerinthus, Basilides, Valeentinus 등입니다(초대교회사/박용규).
영지주의(Gnostics)는 초기 기독교시대의 다양한 종교적 운동을 추종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운동은 사람이 신비한 지식(gnw'si"/gnȏsis)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2세기의 기독교 저작들에서 영지주의적인 다양한 저작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경과 기독교를 심하게 왜곡했습니다. 노스틱 사상에는 철저한 이원론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무지한 조물주(종종 이 표현은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풍자)위에 초월적인 하나님을 설정했습니다. 어떤 노스틱스트들은 창조된 세계가 소피아 즉 “지혜”의 타락의 결과라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적 창조를 악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神性(신성)의 광채들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어떤 “영적인” 개인들의 몸 안에 주입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영적인” 자들은 자신의 천적기원(天的起源)을 알지 뭇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 구속자를 보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구속자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과 그들의 기원과 운명에 대한 비밀한 지식의 형태로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영적인 자들”은 죽음에서 그들의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하여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의 영역을 안전하게 통과함으로써 하나님과 재결합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이 오로지 개인의 “영적인” 본질에 대한 지식에 의존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극도로 방탕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외부의 진흙에 의해 더러워질 수 없는 “진주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전혀 더러워질 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카르포크라테스(Carpocrates)는 그의 추종자들이 죄를 짓도록 강요했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 에피파네스(Epiphanes)는 난잡한 성관계가 신의 율법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가인파(Cainites)는 사악하게 가인과 구약의 악한들을 숭배했습니다. 오피트파(Ophites)는 아담과 하와에게 “지식”을 가져다 준 뱀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노스틱파는 성과 결혼에 대해 극단적으로 금욕주의적 태도를 취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단성이며 여자를 창조한 것은 악의 원천이고, 자녀출산은 단순히 어둠의 세력에 속박당하는 영혼들을 증가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지주의는 고대 세계에서 특히 기독교의 주변에서 큰 성공을 누렸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악과 혼란을 설명해 주었고 인간이 그의 영적본향으로 돌아가는 도피의 길을 제시하였기 때문입니다(교회사핸드북/생명의말씀사).
19세기까지 노스틱파에 대한 교회의 지식은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오리겐, 터툴리안 그리고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저작에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저작은 노스틱파의 문서로부터 발췌한 인용문들을 보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의 대부분은 반대를 위한 논증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학자들은 이 기록이 어느 정도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나그 하마디 본문(Nag Hammadi texts) 같은 최근의 발견은 그 기록 가운데 일부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사람들의 몸의 부활을 부인합니다(고전 15:35).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인합니다(고전15:12). 영지주의는 이원론자들로서 자유를 남용합니다(고전6:12-18). 그들은 지식이 있다하나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을 가졌습니다(딤전6:20). 신화와 족보에 착념했습니다(딤전1:4). 이들은 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했습니다(딤후2:18).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이었습니다(딤전4:3). 그러면서도 성적으로 방종했습니다(딤후3:6). 가현적이며 환상적인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요일4:1-3).
성경은 2세기 이후의 체계화된 영지주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지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사상들은 있었습니다. 바울은 영지적 색채를 띈 자들을 거짓 교사라고 하여 그들을 논박했습니다. 영지주의는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또는 구원자체의 형태로서 지식에 대한 강조와 이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공통된 특질입니다. 영지주의 연구의 대표 학자인 Hans Jonas는 영지주의를 “반세상적 종말론적 이원론”(Anti-cosmic and eschatdlogical dualism)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영지주의는 혼합주의이고 이원론이고 신비적 경향을 띄고 있는 종교사상입니다.
영지주의의 신관 영지주의적 사상은 철저한 이원론이기 때문에 신과 세계의 관계, 또는 인간과 세계의 관계가 모두 이원론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신은 빛과 참의 세계에서 자기충족 상태에 있고 이 세상은 신과는 멀리 떨어져 대립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저속한 통치자들이 판을 치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권력자들도 본래는 신의 세계에서 보냄을 받았으나 이제는 참 하나님을 모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통치하는 권세욕에 눈이 어두워서 참 신을 알 수 없고, 더욱 신의 백성의 눈을 가로막고 서서 방해하는 방해물 노릇만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 저속한 통치자들과 세상을 포함한 하나님 이외의 모든 존재질서의 기원은 영지적 사변의 주요주제입니다. 초월한 하나님 자신은 모든 피조물로 부터 감추어져 있고 자연적 개념에 의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지식은 초자연적 계시나 조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주관/ 통치자들의 영역인 우주는 광대한 감옥과 같은 곳이고, 지구는 그 가운데 가장 깊숙한 토굴 감옥이며, 이곳이 바로 인생살이의 현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는 마치 한 기점인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위로 뻗어나간 소라껍질과 같은데, 고정된 7개의 별이 지구를 둘러싸고 7층천을 이루고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우주적 구조의 종교적 의미는 이 세상과 초월계 사이의 모든 것이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7층천을 다스리고 있는 7통치자는 바벨론의 범신론에서 빌려온 7신입니다. 이 통치자들의 이름이 구약성서에서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여러 가지 칭호(Iao, Sabaoth, Adonnai, Elohim, El Shaddai)로 사용되는데 이 이름들이 열등한 악마적 존재들에 대한 이름으로 바꾸어졌다는 것은 영지주의가 일반적으로 고대의 전승, 특히 유대전승에 의거하여 구약의 하나님을 경멸한 것입니다. 창조된 이 세계는 영지주의자에게는 하나의 감옥이었습니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그 자신의 감각기능들의 움직임과 충동. 욕정과 의욕들은 인간을 세계에 예속시키기 때문에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인간관/ 인간은 감각적 정열에 의해 지배되는 육체와 정신적 기능의 중심부인 혼, 그리고 프뉴마로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과 초월계라고 하는 두개의 영역에 관계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그 육체와 혼 때문에 이 세상에 속했고 그래서 이 세상의 저속한 통치자에게 굴복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예속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프뉴마(영, 혹은 섬광이라고도 불림)입니다. 프뉴마는 그보다 낮은 차원의 혼과 육신 안에 갇혀있습니다. 조물주가 혼과 육의 인간을 만든 까닭은 프뉴마를 감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감금에서 깨어나 자유하게 되는 것은 영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에서 온 신의 세계의 사자(구세주, 구속자)만이 이 속박의 굴레를 풀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영지를 통해서 영지주의자의 내부에 있는 영적불꽃이 점화되고 내적 영이 해방되며 인간은 자신의 참된 본질을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다.
구원관/ 영지주의자들의 구원관은 철저한 이원론적 성격을 띄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영지에 이르려고 하는 목적은 이 세상의 속박에서 내적인간을 해방시켜서 빛과 참과 생명의 세계로 돌아가게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악은 멸망으로 운명져 있는 세계 혹은 역사로 부터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역사와 세계를 탈출할 때만이 인간을 위한 구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필수조건은 세상을 초월해 있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곧 자신의 신적기원과 현재의 비참한 상태를 알고 또 이 세상의 본성이 인간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gnosis)입니다.
윤리관/ 교회를 괴롭혔던 영지주의자들은 스스로 영적지식(gnosis)을 가진 ‘영적인 사람들’(pneumutics)이라고 해서 그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했습니다. 그들은 지식에 있어서도 월등하고 행위에 있어서도 자유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 원리에서 두개의 극단적인 윤리사상이 대두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금욕주의파요, 다른 하나가 방탕스런 자유주의파입니다. 전자는 자기들이 영적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 이상 더 더러운 세상에 물들지 않기 위하여 온갖 세상의 의무를 피하는 태도를 취하며 가능한한 세상과 접촉을 피했습니다. 또한 자유주의파는 영적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자유주의가 금욕주의보다 월씬 우세하게 나타났는데 이들은 특히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해서 거룩한 본성이 더럽혀 질 수도 없고, 또 저속한 통치자들의 보복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적극적인 자유행동을 해야 하는데 이는 조물주의 법도를 고의적으로 범함으로써 저속한 통치자들의 계획을 훼방 놀아서 뒤집어 놓을 수도 있고 그 결과로 역설적이긴 하지만 구원사업에 공헌하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이단들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들이 교회를 잠식하려하고 성도들을 미혹해서 멸망의 길로 끌고 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거기에 빠져드는 영혼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은 악하고 또 악하며 그리고 또 악합니다. 이들은 교회를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며 가정을 파괴하는 흉악한 이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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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한 이리들(사도행전20:17-35)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29-30절)
Mesopotamia출신의 Persia인 Mani(216-276)는 스스로 종교를 세웠습니다. 자기가 최종적인 우주적 계시라고 주장했습니다. Mani교도 이원론적입니다. 영지주의운동처럼 빛과 어둠의 원리 사이의 날카로운 대립을 주장하였습니다. 항상 이단이 그런 것처럼 마니교도들(Manichaeans)도 열성적이었습니다. 아프리카와 유럽, 중국에까지 자기들을 전했습니다. 따라서 마니교도들은 4세기의 교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도 회심 이전 한때 마니교에 빠져 있었을 만큼 영향력이 컸습니다. 마니교도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것 일부를 중세기에 소아시아와 유럽에서 널리 퍼진 이단적 집단들에게 전했습니다. 원래 Mani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한 분파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Mani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Mani는 그의 가족을 Mani교로 개종시켰습니다. Mani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전파했는데 전 Persia와 인도에까지 전하였습니다. Mani는 276년에 죽었습니다. 그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Mani교의 교리는 두 개의 독립적인 영원한 원리로 광명과 흑암, 神과 물질이 존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첫번째 시대에 광명과 흑암은 분리되었습니다. 두번째 시대에 그 둘은 흔합되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그들은 다시 한 번 분리되어야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예수와 다른 종교 지도자들은 빛의 영흔들을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풀어 주기 위해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니교도는 택자로 알려진 선택된 사람들과 듣는 자로 알려진 다수의 평신도로 엄격히 나뉘어 있었습니다. “듣는 자”는 일반 시민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택자들에게 매일 과일과 오이 그리고 멜론(이러한 것들이 많은 빛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을 선물로 봉헌하였습니다. 택자는 금욕주의자와 채식주의자였습니다. “듣는 자”의 영혼은 죽어서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흰옷으로 구분되는 택자만이 직분을 맡고 가장 거룩한 의식을 집행할 자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Mani교는 초기에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전파되었습니다. 로마의 퇴역 군인들은 274년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새 종교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Mani교의 북아프리카 침입으로 인하여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297년에 칙령을 선포했습니다. Mani교도들을 페르시아의 앞잡이로 정죄하고 처형하라고 했습니다. 4세기에 많은 지역에서 Mani가 전파된 후 어거스틴의 강력한 반박과 그의 제자 Evodius와 다른 교회 지도자들의 논박은 Mani교의 전파를 저지시켰습니다. 6세기에 Mani교는 서방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7세기부터 12세기까지 아르메니아에 펴진 바울파 운동은(마니교를 거부하였지만) 이원론적 견해는 Mani와 닮았습니다. 바울파는 10세기에 불가리아에 이르렀고, 11-12세기에 발칸반도에 퍼졌던 보고밀파(Bogomils)의 발전을 도와주었습니다. 보고밀파 운동은 다시 카다리파(Cathars & 알비파)를 자극시켰습니다. 카다리파는 12, 13세기에 남부 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1208년 교황 이노센트 3세 때 종교재판에 의해 사라졌습니다.1
이단은 항상 교회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교회와 유사해서 사람들이 볼 때 헛갈리게 합니다. 교회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이단에 빠져듭니다. 특히 사람들을 미혹하느라고 선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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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도에서 바울의 설교/회개(사도행전20:17-35)
곧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20절). 회개는 헬라말로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metanoevw/metanoêo란 metav/metâ/‘함께’와 noevw/noêo/‘지각하다’의 합성어입니다. ‘메타노에오’는 ‘후에 알아차리다’입니다. ‘메타노에오’는 ‘마음(mind)을 바꾸다, 다른 견해를 채택하거나 받아들이다’입니다. 이때 마음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전의 견해가 어리석었거나 부적당하거나 악하였다는 인정에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유감으로 생각하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고전 헬라어에서 ‘메타노에오’ 語群(어군)은 신약성경에서의 ‘회개’까지의 단계까지는 발달되지 못하였습니다. 헬라사회는 인간의 전 삶의 철저한 변화나 회심, 돌아옴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회심의 개념’은 헬라사상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LXX에서 ‘메타노에오’는 하나님에 관해서든지(삼상15:29/렘18:8/욜2:13-15/암7:3), 인간에 관해서든지(렘8:6,13:19) 간에 히브리어 ‘나함(!j'n:/nāham)의 니팔형’을 번역하였습니다. ‘나함의 니팔형’은 ‘어떤 일에 대해 뉘우치다’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돌아옴’은 선지자들이 설교하였습니다. 히브리어 동사 ‘슈브’(bWv/shūb)이며, 헬라어로는 ‘에피스트레포’(ejpistrevfw/epistrêpho/돌이키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돌이키라는 예언적 요구에는 백성과 하나님, 그리고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반드시 인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죄와 배교는 이러한 인격적 관계를 방해하고 파괴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돌이킴은 전인으로서의 그 인간에게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다는 것은 것은 악을 외면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메타노에오’는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 12회, 공관복음에 16회, 사도행전에 5회, 그리고 바울서신에서는 1회(고린도후서)만 나옵니다. 신약성경은 LXX역본의 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LXX은 '슈브'를 '에피스트레포'로 번역) 신약성경은 ‘돌아오다’를 의미하는 ‘슈브’의 뜻을 표현하기 위하여 메타노에오를 사용했습니다. ‘에피스트레포/돌이키다’ 대신 ‘메타노에오’를 선택한 것은 신약성경이 ‘슈브’의 구약적 용법 속에 내포되어 있는 구체적인 것입니다. ‘슈브’는 물리적 개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나 사상, 의지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회심하다'라는 관념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돌아온다‘는 全人(전인)에 의한 결단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회개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면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잘못은 했지만 ‘후회한다’는 것이기에 마음을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메타노에오’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이전의 삶을 완전히 청산하고 새롭게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회개(메타노에오)입니다. 단순히 잘못했다가 후회하고 다시 또 잘못을 범하는 것이 아닌 회개가 ‘메타노에오’입니다. 회개는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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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도에서 바울의 설교/인내의 전도(사도행전20:17-35)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대인의 간계는 복음의 진보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의 간계(ejpiboulh;/ep9iboullê)는 유대인들의 음모와 책략과 계획들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할 음모, 갖가지 책략, 그리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훼방한 계획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사도행전9: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사도행전20:3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사도행전20: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사도행전23: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사람이 인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도바울의 인내는 어떤 조그마한 고통을 참은 것이 아닙니다. 수시로 사도를 없이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럴 때 인내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모두 참았습니다. 인내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바란 것입니다(롬2:4/벧후3:9). 죽어져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벧후3:15). 구원의 공의를 현재에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롬3:25,9:2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습니다(롬15:5,6). 이것을 위해서 사도는 많은 인내를 했습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어떤 때 인내를 이룰 수 있습니까?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눅8:15). 사랑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고전13:4,5/엡4:2). 환난의 때 인내해야 합니다(롬5:3,4/계13:10). 믿음의 시련 때 인내해야 합니다(약1:3). 하나님의 계명과 믿음을 지킬 때 인내해야 합니다(계14:10). 교회를 돌볼 때 인내해야 합니다(고후12:12). 죄악을 대적할 때입니다(계2:2,3).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칠 때입니다(살전5:14/딤후2:24,25).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입니다(딤전6:11,12).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할 때입니다(히12:12).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릴 때입니다(약5:7,8). 용서할 때입니다(딤전1:16). 선을 행할 때입니다(갈6:9).
인내의 결과 시비를 그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온전하여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연단과 소망을 이루며, 결실을 맺고, 약속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아름다움을 이루고,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내를 이룬다는 것은 쓴 물이 넘어오는 것 만큼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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