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새벽강해'에 해당되는 글 36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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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들(사도행전28:7-10)
멜리데에 상륙하여 대접을 받고 있는 중에 누가는 보블리오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돌립니다. 보블리오는 멜리데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 했습니다. 마침 바울일행이 상륙한 근처에 보블리오의 토지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보블리오는 바울일행을(276명) 사흘간이나 친절하게 대접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친절한 보블리오입니다. 276명을 3일간이나 먹고 재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보블리오는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Jan Hus/1374-1415는 교회개혁과 체코인의 민족주의의 대의를 위한 순교자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Hus는 1401년 사제로 임명되었으며 프라하의 찰스 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대학 가까이에 있는 베들레헴 예배당에서 설교하면서 생애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Hus는 wyclif/위클리프의 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당시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교회내의 권위로서 성경을 강조하였습니다. Hus는 설교를 교회 예배에서 중요한 위치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의 주저 교회론(On the Church)에서 그리스도를 유일한 머리로 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정의하였습니다. Hus는 성직의 전통적 권위를 옹호하였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죄 사함을 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Hus는 교황이나 추기경이 성경에 어긋나는 교리를 만들 수 없으며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도 명백히 잘못된 자들의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Hus는 성직자의 부패를 비난했습니다. 사람들이 彫像(조상)을 예배하고 거짓된 기적을 믿으며 “미신적 순례여행”을 비평하였습니다. Hus는 성찬식에서 잔을 평신도에게 허락하지 않는 교회를 비판했습니다.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였습니다.
당연히 Hus는 후스는 프라하에서 오랜 악전고투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의 문제는 Roma에 회부되었습니다. 1415년 Hus는 그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콘스탄스 공의회(CounciI of Constance)에 참석했습니다. Hus는 황제의 안전 통행증을 가지고 여행하였지만 그의 견해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프라하의 대주교는 Hus의 입장을 강력하게 배격했습니다. 대주교는 위클리프의 저서와 Hus의 책들을 사제들의 Te Deum/‘하나님이여 당신을 찬양하나이다’의 노래 속에서 들으면서 불에 태웠다. 그리고 그들은 Hus에게 교황의 명령들에 복종할 의사가 있는가 라고 물었다. 그러나 교황의 명령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일치할 경우에는 복종하겠지만 ‘모순될 경우에는’ 안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교황은 Hus를 파문시켰습니다. 콘스탄스에 도착하자마자 감옥에 가두고 Hus를 심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심문은 일방적이었습니다. Hus가 말하려고 하면 마귀들의 조종을 받는 자들이 사방에서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들은 Hus를 화형시켰습니다. 재를 모아서 흔적이 남지 않도록 기둥의 주변 땅속에 묻고, 나머지 재는 라인 강에 뿌렸습니다.
그 회의에 참석했던 보헤미아의 총대들은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곧 후스주의자들(Hussites)이었습니다. 그들은 돌아오자 종교적관용과 옥에 갇혀 있는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들은 시의회의원들 가운데 마귀 같은 13명을 의회당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이로써 15년이나 교황주의자들과 전쟁을 했습니다. 많은 후스주의자들이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다볼파/Taborites라고 불렸습니다. 후에는 보헤미아 형제단이라고 불렸다가 또는 모라비안 형제단(the Moravian Bretheren)이라 불렀습니다.
모라비안 형제단들은 진젠도르프 시대에 교황주의자들에게 매우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 중의 일부는 진젠도르프가 자기의 할머니로부터 구입한 작센(Sachse) 구역에서 피난처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진젠도르프는 그들을 자신의 구역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작센 구역에는 모두 300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정착하였습니다. 이곳은 모라비안파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루터교도와 칼빈주의자들 그리고 후스파들도 거주하였습니다. 진젠도르프는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로 여기고 사랑하였으며 한 몸의 지체들로서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신학생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말을 합니다. 자신들도 신학교를 나왔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신학생들에게 자리를 주지 않습니다. 대형교회에서 신학생들이 들어갈 자리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신학생들이 과잉생산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친절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못한다고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합니다. 교회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야 어떻게 되든지, 자신의 욕심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격려하시는 하나님 (0) | 2018.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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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갚게 하시는 하나님 (0) | 2018.02.26 |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 (0) | 2018.02.17 |
독사에 물려도 (0) | 2018.02.12 |
구원을 얻은 사람들 (0) | 2018.02.07 |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사도행전28:1-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6절)
고대 헬라세계에서 신개념은 본질적으로 다신론적입니다. 많은 개개의 신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들의 질서정연한 전체성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신들에 대한 다수 개념에서부터 신들의 계보와 계급이 발전되었습니다. 높고 낮은 신들, 신들의 집안, 그리고 만신전이 그 예입니다. Zeus Apollo 등을 신이라고 하며, 우주도 신으로 여깁니다. 따라서 Greco-Roman시대에는 원시적인 힘들에 대해서도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의 신 개념으로서 신들은 하나의 주어진 요인(factor)입니다. 신들은 비록 영원한 것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신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재하게된 것들로 인식했습니다. 그들은 신들이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혼돈과 투쟁하여 원시적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힘들을 통제하여 다스리는 질서요 형태(그러므로 세상의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신 개념은 신들은 국가에서의 질서와 같은 인간적 질서와 동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신들은 우월한 능력과 지복을 누리지만 도덕적 진지성은 결여합니다. 신들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들의 감정과 관습도 인간의 것과 비슷하다고 인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유일하시고 자신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역사 이래로 다양한 神觀念들을 형성시켜 왔습니다. 어릴 때에 무슨 신이 이 땅에 많은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신이란 무엇일까? 무덤에 가서 절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에게 신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죽음의 저 너머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을 믿어야 정상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통상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精靈信仰/animism / 인간의 육체를 떠난 亡靈들이 떠돌아다니며 인간생활에 좋고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 영혼들을 달래거나 숭배하는 신앙입니다. 즉 Shamanism입니다. 샤머니즘은 샤먼에 의하여 주도되어 생겨나는 종교현상입니다. 샤먼(Shaman)이란 병자를 고치고 저 세상과 교통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한 것입니다. Shamanism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에서 두드러졌습니다.
2. 多神論/polytheism / 여러 신들의 존재를 신용하는 것으로 Greece 신화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대개 여러 신들은 영웅들이나 자연의 대상들 즉 행성이나 호수, 산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들을 보면 신과 인간의 불륜들이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따라서 신인가 하면 인간이고, 인간인가 하면 신인 것이 그리스 로마 신관입니다.
3. 汎神論/pantheism / 대표적인 예가 인도의 브라만교입니다. 우주를 지배하는 제l원인을 신으로 생각하며 신과 만유를 통일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모든 것이 신입니다. 개구리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나 소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별과 태양 달도 신으로 착각합니다.
4. 理神論/deism / 17, 18세기에 주로 영국의 자유사상가나 과학자들에 의해 제창된 바 있는 합리주의적 유신론으로서 역사 속의 초자연적인 것들 일체를 배격하는 신사상입니다. 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초월적 존재로서만 파악하며 내재하셔서 인간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을 강력히 부인합니다.
이상과 같이 사람들은 신도 아닌 것을 믿고 있습니다. 신이라고 하면 창조하고 거룩하며 인간들의 모든 것을 섭리하고 관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신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갚게 하시는 하나님 (0) | 2018.0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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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들 (0) | 2018.0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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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에 물려도(사도행전28:1-6)
태풍을 겪어 가까스로 살아난 사람들은 멜리데의 섬에 내렸습니다. 섬 주민들은 바울일행을 보자 특별한 동정심을 발휘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일행은 비가 오고 날이 추워서 몸이 얼어있을 정도였습니다. 섬 주민들은 바울일행을 위해서 나무를 가져와서 불을 피웠습니다. 바울사도는 같이 온 사람들을 위해서 불이 꺼지지 않도록 나무를 넣어서 불을 피웠습니다. 그때 나무속에 있던 독사가 불의 뜨거움을 인해 나오면서 바울사도의 손을 물었습니다. 섬 주민들은 바울사도가 죄수임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바울사도를 중죄인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땅히 그런 죄인을 독사가 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인과응보라는 말을 사람들이 많이 씁니다. 당연히 어떤 일에 대한 벌이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섬 주민들은 중죄인인 바울을 독사가 물었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죄인 됨이 범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마땅히 뱀이 심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4절을 보면 그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자신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사도를 살인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바다는 그를 살렸을지 모르나 결코 공의(divkh/Homer 이래로 신화적인 인격화, 즉 공명정대한 처벌의 여신 dike를 의미함. 여신 dike는 Solon 법전에서 범신적, 우주적, 성공적 원리가 되었음)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곧 물린 데가 부어오르든지. 갑자기 엎드러지든지, 아니면 그대로 죽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래 기다려도 죽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멜리데 사람들은 바울사도를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독사는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사의 독은 혈액에 퍼지면 피가 굳어버립니다. 곧 피가 흐를 수 없기 때문에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사가 무섭습니다. 2000년 전의 독사나, 현재의 독사나 독사는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죽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신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멜리데에서 독사에 물려 죽었다면 애초에 성령께서 유라굴로를 만났을 때 버리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위 자연의 섭리에 어찌할 수 없다면 일반적인 신들과 똑같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람들이 믿을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즉 모든 피조물들이(온 우주의)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통상적으로는 독사에 물리면 죽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죽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설령 멜리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바울은 살아나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복음, 주님의 복음이 바울에 의해서 로마의 행정부에 전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왜 로마의 행정부입니까? 당시에 세계의 중심이 로마였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 복음을 전하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정확하며 실수가 없으십니다.
친절한 사람들 (0) | 2018.0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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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얻은 사람들 (0) | 2018.0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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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위로 (0) | 2018.01.23 |
구원을 얻은 사람들(사도행전28:1-6)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Melivth는 벌꿀이 생산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헬라인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아마도 벌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Mellîte는 무리지어 있는 메마른 작은 바위섬입니다. Mellîte는 한때 Carthago의 점령지였습니다. 바울일행은 섬에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구원을 얻은 후에’에서 구원은 diaswvzw/diasôzo 는 ‘안전하게 살려내다. 구원하다. 구출하다’입니다. diav/diâ/통하여 와 swvzw/sô캐/구원하다의 합성어로서 ‘무사히 옮기거나 구해내다’입니다.
diasôzo는 바울이 로마로 가는 도중에 겪은 난파와 여러가지 다른 위험들을 피한 것에서 등장합니다(행23:24,27:43,44,28:1,4). 또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나음을 입은 병자(마14:36), 자신의 종을 고쳐주기를 원한 백부장의 간구(눅7:3)에 diasôzo가 등장합니다. 베드로전서3:20에서는 노아와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여덟 사람들(벧전3:20)에 관해 사용되었습니다. 육체적인 위험들에 관한 것이지만, 여기에는 구원론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합리한 일들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불합리, 경제적인 불합리, 그 외에 여러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선하다면 이런 일들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선하다면 절대로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된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4장2항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을 지으신 후에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여 이성적이고 불멸적인 영혼을 주셨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함을 부여해 주셨다. 또한 그들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해 주셨고 그 율법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그렇지만 그들이 범죄 할 수 있는 가능성 아래 그들 자신의 의지의 자유를 허락해 주셨는바 그 의지는 변화되기 쉬웠다. 그들은 마음에 새겨진 율법 외에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그 명령을 지키는 동안에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운데 행복하였으며 또한 피조물들을 다스렸다.
라고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4장1-3항을 보면
우리의 시조들은 사단의 간계와 시험에 유혹을 받아 금지된 실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죄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을 따라 기쁘게 허용하셨는데 이는 그것을 명령하시어 그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로 이미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이 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본래의 의를 잃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통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럽혀지고 말았다. 그들이 온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에, 그들이 범한 이 같은 죄의 죄책은 모든 후손들에게 전가되었다. 또한 그 죄로 인하여 바로 그 사망과 부패한 성품이 통상적인 출생법에 의하여 그 시조들에게서부터 후손들에게 유전되었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왜 구원을 받아야 합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소위 말해서 원자들의 우연한 배열로 말미암아 생겨난 산물이 아닙니다. 아주 저등한 것으로부터 고등동물로 진화한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법을 인간들이 따라야 합니다. 생물이 살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조건들이 맞아야 합니다. 온도 습도 등 여러 가지가 맞아야 합니다. 우주의 많은 별 중에서 그에 맞는 조건이 지구밖에는 없습니다. 지구 같은 별을 찾으려고 안간 힘을 쏟고 있지만 현재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지구의 위성인 달에 가서 살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겠습니까? 그러나 달은 지구와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식한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믿어야 합니다. 죄인임을 인식한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라는 말을 믿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숨이 붙어 있을 동안에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곧 영혼이 떠난 다음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영혼을 절대로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떠난 영혼들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하나님의 지배 안에 있습니다. 그 어떤 세력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배 안에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의 손에서 떠난 것입니다. 있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있다고 하면 신성모독입니다.
사람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죄에 놓여나야 합니다. 사람은 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10: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9)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십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2:13)
오직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2:13)
경건한 근심을 해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
그러므로 주의 보혈을 믿어야 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오직 주의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좋은 사람들(사도행전27:33-44)
42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바울사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고 배를 가볍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운송하고 있는 밀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날이 새자 어느 땅인지 모르지만 육지가 보였습니다. 그 땅의 경사진 항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선원들은 거기에 배를 접안하고자 의논한 후에 배를 그곳에 대고자 했습니다. 먼저 닻줄을 모두 끊어서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방향을 잡는 킷줄을 늦추었습니다. 돛을 달아서 해안으로 배를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물이 합해지는 곳으로 들어가자 배가 더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배의 앞부분(이물)은 부딛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배의 뒷부분은 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사도의 말대로 한 섬에 걸린 것입니다.
죄수를 호송하는 군사들은 혹시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갈까봐 죄수들을 모조리 죽이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들이 도망가면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율리오는 군사들을 제지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사도도 죄수에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수를 죽이려면 바울까지 죽여야 했기 때문에 백부장 율리오는 그들의 뜻을 제지하였습니다. 그래서 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육지에 올랐습니다. 배가 부서졌기 때문에 널조각이나 배의 물건들을 이용해서 상륙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상식으로나 어떤 것으로 생각해도 결코 아닌데 맞다고 하는 사람들,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국민들이 마땅히 써야 할 세금을 운하공사에 꼴아박았던 사람들, 나쁜 사람들입니다. 마땅히 수사를 해야 할 사항을 상사라고 수사하지 못하게 한 사람들 나쁜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왜곡하여서 비진리가 진리라고 한 사람들 나쁜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백부장율리오는 어떻게든지 바울의 편리를 봐주고자 했습니다. 그가 누구를 만나든지 허락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자신의 이권을 얻기 위해서 그야말로 애국자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대로 두면 국익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사람들을 중상모략을 해서 많이 죽였습니다. 이름을 거명하면 금방 알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사사케 했습니다. 그리고 간신들이 항상 왕주변에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였습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어떡하든지 바울사도를 보호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국가에 많아져야 합니다. 특히 정치권에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나라가 잘 돌아갑니다. 좋은 사람들,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바울의 위로(사도행전27:33-44)
한때는 우리나라에 Well-being이 유행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유행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다가 요새는 Healing입니다. Healing이 하도 유행하여 음식점까지도 Healing음식점이 있습니다. 먹으면 무엇이 Healing되는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이 Healing, Healing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Healing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일시적인 Healing이 될지 모르지만, 영원한 Healing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의 Healing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Healing은 Healing의 모양을 낸 것이지, 진정한 Healing이 아닙니다.
바울사도는 275명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14일을 거의 먹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표류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확실한 미래가 없었습니다. 이대로 바다에 갇혀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누구하나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었습니다. 항해에 잔뼈가 굵다고 하는 선장이나 선원들, 모두 어떻게 될지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승선된 사람들에게 소망을 줄 수 없었습니다. 오직 바울사도만 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승선된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너희 중에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성령께서 바울사도에게 source를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안개속입니다.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인생이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학교 때 성적이 우수하다고 해서 인생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안개가 걷히지 않습니다. 그대로 안개 속 길을 걸어갑니다. 즉 인생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이외에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바울사도와 같은 상황에서 승선된 사람들에게 확실한 답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확실한 답을 주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어떻게 그들에게 답을 주었습니까? 성령께서 그와 동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확실한 소망의 답을 얻은 사람들은 바울사도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비로소 살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살수만 있다면…’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바램대로 소망을 가져도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사도의 말대로 먹고 기운을 차리고자 했습니다. 바울사도의 권고대로 그들은 새 소망을 가졌고, ‘이젠 살았구나’하는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과연 세상에서 믿을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진리는 fact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거짓을 가지고 마치 fact인양 속이는 것이 세상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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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길이(사도행전27:27-32)
14일째 되는 날 밤에 배는 아드리아 바다에서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쯤 되어서 선원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물의 깊이를 재었습니다. 처음에는 20길이었습니다. 조금 가다가 재어보니 15길이었습니다. 선원들은 혹 암초에 걸릴까봐서 배 뒤쪽에 닻을 네 개나 내렸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 사이에 지긋지긋한 태풍에 엄청나게 시달린 선원들이 틈을 엿보아서 도망하려고 했습니다. 선원들은 닻을 내리는 척하고 거루(작은 배)를 바다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이 도망하면 배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그들이 도망하지 못하도록 거루줄을 끊어버렸습니다.
바울이 탄 배는 태풍 유라굴로로 인해서 밤낮으로 14일간을 미항에서부터 멜리데 섬까지 약800km를 표류했습니다. 아마도 낮과 밤이 모두 밤 같았을 것입니다. 하늘은 캄캄하고, 계속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전혀 의도하지 않는 곳으로 배는 표류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살 소망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젠 죽었구나’라고 했을 것입니다.
고난은 인생에 있어서 필수적인 단어 같습니다. 오지 않아도 되는데 고난은 필수적인 단어가 되었습니다. 고난은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합니다. 고난은 사람에게 여러 route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러자 대체적으로 고난은 경제적인 배를 타고서 사람들을 당혹하게 합니다. 물론 바울사도처럼 박해의 배를 타기도 합니다. 초대교회 때는 거의 박해와 순교의 배를 타고서 고난이 점점 심화되었었습니다. 현재는 많은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힘들게 해서 괴롭힙니다. 학비가 없어서 가고 싶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거나, 너무나 나라가 가난해서 한 끼니의 밥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등이 현재 지구상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고난이 계속해서 우리의 생이 끝날 때까지 cycle적으로 반복되어 사람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고난의 길이는 엄청나게 긴 것입니다.
이 고난은 Christian이나 non-Christian이나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에게 더 고난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보다 upgrade 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낮도 밤 같고, 밤도 밤 같은 지루한 14일의 태풍 속에서 고통당하는 것처럼 우리의 고난의 길이도 결코 짧지 않습니다. 지나간 날들에서 우리가 느끼고 경험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끝나 가는데도 고난은 진행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진들이 고난을 당하다가 죽은 예가 많음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고난이 우리들을 따라다닙니까? 여러 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첫 번째 죄를 지은 결과로 인해서 이 세상이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이 세상을 모두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원한 고통은 면제를 받습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는 고통을 당하지만, 영원한 고통은 아닙니다. 한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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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사도행전27:22-26)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이 배에 승선한 사람은 276명입니다. 이 사람들이 거의 보름동안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태풍이 그들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바울사도가 그들의 가운데 서서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권하는데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문자적인 의미는 ‘기운을 내라, 기뻐하라’(eujqumevw/euthuimêo)입니다. 그 이유는 한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배는 부서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너는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너와 같이 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을 네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섬에 상륙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상태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습니까? 소위 자신이 무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은 자신이 도통을 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에 나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죽어도 가장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어떤 비참한 상태에 있는 줄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안다고 하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상태는 전적으로 부패한 상태입니다. 인간은 모태에서 나올때부터 그의 상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심히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의 모든 부분이 죄로 감염되어 있습니다. 모든인간의 지성은 심히 어두워졌습니다. 모든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행동하는 의지는 어둔 지성과 반동적인 마음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가슴은 오염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감성은 왜곡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매우 악합니다. 그래서 불경건한 것에 이끌리고 있습니다. 이런 양심을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죽음을 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한없이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앞에 나아가면 됩니다.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돈을 주거나 몸을 바치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그 이름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바울사도는 276명 앞에서 말합니다. 너희들은 이제 걱정마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씀하신 하니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무엇을 믿습니까? 나만의 knowhow를 믿습니까? 무엇을 믿든지간에 자유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가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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