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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테러(사도행전23:12-15)

 

산헤드린이 바울을 심문하다가 부활의 문제로 사두개인과 바리새파로 나뉘었습니다. 그들은 그 문제로 밤새 다투었습니다. 금방 죽이겠다고 하다가 교리문제가 터지자 잠시 나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튿날 유대인들은 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맹세했습니다. 그 맹세의 내용이 바울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사람들입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도사리고 있는 자들이 4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유대인을 살리는 것이고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유대의 장로들에게 찾아가 자신들의 맹세한 것과 한 패거리 되었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에서 다시금 천부장에게 바울을 데려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신들이 바울이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열심당원의 하는 짓을 채택했습니다. 열심당원들은 소란한 틈을 타서 단검으로 사람을 살해했습니다. 바울을 죽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열심당원처럼 해서 바울을 없애겠다는 것입니다.

Terrorism은 정치, 종교, 사상적 목적을 위해 폭력적 방법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수단을 통해 민간인이나 비무장의 개인, 단체, 국가를 상대로 죽이거나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혹은 어떤 행동을 중단하게끔 강요하는 행위입니다. terror를 하는 자들을 terrorist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믿는 이념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민간인이나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희생이 어쩔 수 없다는 가치판단을 내림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그 자신 혹은 자신들의 동조자들의 생명 또한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헌신과 충성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약진하는 그리스도교에 일침을 가하여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산헤드린과 유대인들은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호세아5:11을 보면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좇기를 좋아하므로…’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과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한 것처럼 사람의 소리를 듣기 좋아했는지도 모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도는 전혀 고려치 않았습니다. 오직 세속과 현실에만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와 선견자들을 보내고 끝내는 아들이신 예수님까지 보내셨지만, 전혀 자신들의 고집을 꺾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완고하다’라는 말은 자신의 고집이 너무 세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도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완강한 암소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고집을 내세웠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고칠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마귀는 성도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뜻이 성도들에게 전해지지 않게 하려고 온갖 수단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놀아나면 하나님에게 반역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자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각종문제를 일으키고 교회를 어지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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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시민권(사도행전22:24-29)

 

오늘날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이란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가지고 있는 증명서입니다. 주민등록은 보호와 통제입니다. 따라서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헌법에 따라야 하고, 반면에 외국인과 달리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피’와 ‘귀화’입니다. 그 나라 국민에게서 태어나면 태어나자마자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귀화’는 외국이면서 한국의 국적을 갖고 싶을 때 귀화법에 적용된 사람들을 절차에 의해서 국민으로 받아들인 사람을 말합니다. 태어나기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귀화를 했다면 한국민의 적용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시대의 시민은 주로 Greece와 Roma의 시민권에 대해서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Greece와 Roma의 시민권을 적용시키는데 달랐습니다. Greece의 도시국가인 Athens는 ‘피’가 시민권을 가늠했으며, 반면에 Roma는 ‘뜻을 같이하는 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습니다.

로마인이야기를 쓴 Shiono Nanami에 의하면 Athens인들은 Athens 영토 안에서 둘 다 Athens 태생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만 ‘아테네 시민’이었습니다. Athens의 황금시대를 쌓아올린 대정치가 페리클레스(Perikles/주전495-주전429)도 두 번째 배우자가 Miletus 태생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Athens시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Perikles가 세운 업적에 보답한다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아서 겨우 시민권을 얻었다고 합니다.

부모가 둘 다 Athens 태생인 Socrates는 Athens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Macedonia 태생인 Aristoteles는 뤼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창설하는 등 Athens 문화 창달에 크게 이바지했는데도 시민권이 없었습니다. Athens가 이렇게 폐쇄적인 이유는 Athens가 민주정체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정체는 모든 유권자가 평등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국 출신에게도 평등한 권리를 주면 기존시민들의 반발을사서 언젠가는 사회불안의 원인이 될 게 뻔합니다. 그래도 민주정체를 시행하는 한. 시민은 모두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Athens는 쇄국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Athens의 선착장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자도 시민이었는데, 서양 철학사의 거봉인 Aristoteles는 Athens에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Greece어를 사용하는데도 Sparta나 Corinth 태생에게는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Athens 태생은 Sparta나 Corinth 시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Roma인의 정책은 동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Roma인은 정복한 족속들을 몰살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Roma인으로 동화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씨저가 정복한 갈리아 부족장들을 원로원에 들여놓았습니다. 의료나 교육에 종사하는 자라면 피정복민족이든 피부색이 다르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속주민 병사들이 25년의 병역을 마치면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법을 제정했습니다. 황제들은 제국전역의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서 Roma시민권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주후212년에 Caracalla 황제는 Roma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시민권을 준다는 법령을 발포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Roma의 시민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Roma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정죄 즉 재판을 받지 않고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날 때부터 로마시민이었습니다. 천부장은 돈으로 Roma시민권을 샀습니다. Roma시민권이 없는 줄 알고 채찍질을 하다가 천부장에게 보고하고, 천부장은 곧 달려와서 결박을 풀었습니다. 그만큼 Roma시민권은 위력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Roma시민권은 부모가 Roma시민이면 그 자녀도 Roma시민이었습니다. 또한 Roma를 위해 크게 기여한 사람들에게 그 대가로 Roma시민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서 Roma시민권을 샀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은 미국의 국적을 얻으려고 안달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고위직과 돈 있는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미국의 국적을 얻으려고 야단법석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시민권은 사람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 붙잡혀있든지 최선을 다해서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을 위해서 시민권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영달과 안녕을 위해서입니다. 시민권을 가지되 사용처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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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받은 대로(사도행전22:4-16)

 

사도행전22:17-21 17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바울사도는 회심하자마자 바로 전도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3년간 아라비아사막에서 주님과 교제를 했습니다. 바울사도의 회심직후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파함(9:19-22)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아라비아에 3년간 머물렀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옴/ 갈라디아서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핍박으로 다메섹을 탈출함/사도행전9:23-25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내리니라

고린도후서11:32-33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15일간 예루살렘을 방문함/사도행전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갈라디아서1:18-19 그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일을 유할쌔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바울사도는 회심 후에 예루살렘에 있는 헬라파 유대인들과 격렬한 논쟁을 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바울사도에게 많은 적의가 있었습니다. 바울사도가 유대인의 대표로서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열심히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변절자로 여기며 심히 공격했습니다. 바울에게 심한 적의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는 예루살렘에 머물러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렸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도를 전한다고 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의 일과 다메섹의 일을 주님께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예루살렘사람들은 듣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사도는 예루살렘의 전도를 접어야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해외선교사로, 어떤 사람은 국내의 목회자로, 어떤 사람들은 직장의 선교사 등으로 각각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가장 잘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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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사도행전22:4-16)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14절)

아나니아는 바울사도가 다메섹에서 제일먼저 만난 사람입니다. 이미 성령께로부터 사울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에 사울에 대한 루머를 일축하고 사울에게 하나님의 사명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을 바울에게 그냥 하나님으로 말하지 아니하고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묘사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바울)에게 우리조상들의 하나님으로 묘사함에 따라 그리스도의 도가 신흥종교가 아닌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고 구약시대부터 약속된 도(道)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그리스도의 도를 믿는 우리들을 유대인들은 심히 오해를 했습니다. 마치 신약시대에 처음으로 생긴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아브라함과 다윗과 선지자들을 말씀하셨어도 그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했던 것입니다. 또한 ‘천주교는 큰 집이고 기독교는 작은 집이다’고 하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오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온갖 미신들을 혼합시키고 살을 불렸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갔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 또는 로마교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로마 카톨릭에 있었다가 종교개혁을 해서 마치 로마 카톨릭은 구교, 개신교는 신교로 그들(로마 카톨릭)이 조롱하는 말로 썼던 용어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루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심하게 오염되고 변질된 로마교를 떼어내고 홀로서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큰집, 작은집 하고 운운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이후 모든 성도들은 ‘저 의인’을 보는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말한 ‘저 의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저 의인입니다. 이 의인 때문에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자들이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관원들이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자들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왜 스데반이 기쁨으로 그 의인을 위해서 순교를 당했는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에서 막강하게 종교권을 행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을 전혀 몰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들이 모세의 자리에 올라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교권주의자들은 모세의 자리에 많이 앉아있습니다. 분명히 다른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에게 면책권을 주기도 하고, 자기마음대로 전횡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를 당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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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출생과 배경(사도행전22:2-4)

22:2-21은 3-4절은 바울의 출생과 배경, 5-16절은 바울의 회심, 17-21절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변증하고 있습니다.

어떤 타국인이 우리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데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한다면 아마도 말할 동안에는 조용히 할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바울을 죽이려 했던 폭도들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바울사도의 말을 일단 들어보자는 것입니다.

바울은 ‘길리기아’Kilikiiva/Killikiîa ‘다소’tarsov"/tarsôs 출신이었습니다. 길리기아는 소아시아의 한 지역입니다. 다소는 길리기아의 수도입니다. 바울이 다소에서 출생했습니다. 다소는 유속이 빠른 키드누스 강변의 도시입니다. 지중해에서 16km, 타우루스 산맥에서 남쪽으로 48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했습니다. 다소는 소아시아의 산맥의 녹은 눈으로 이루어진 차가운 강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평원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해수면 위로 21m되는 지점에 위치한 이 도시 아래에 항구호수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지중해 선박이 접근하기 용이하고 안전한 곳입니다. 이 독특한 수로 때문에 다소 내륙은 해상 무역이 번창하였습니다.

주전41년에 이 내륙 호수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를 만나 사랑에 빠진 장소입니다. 유브라테스로부터 시작되는 고대 무역로가 안디옥 및 다소에서 동쪽으로 80km 되는 동지중해의 대로와 결합하여 길리기아 중앙을 통과하여 북으로 돌아 다소산맥을 통과 소아시아의 고지에 이릅니다. 다소인들과 그 이웃들은 주전1,000년에 이 고지대로 가는 자연상태의 협소한 통로를 넓히기 위해 암벽을 깎아서 뚫는 위대한 공학적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이 성문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악 통로 중 하나입니다. 육지의 대로와 바다의 길로 인해 다소는 동과 서가 만나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아래서 다소는 총독의 지배권이었습니다. 크세노폰은 다소를 “위대하고 번영한 도시”라고 했습니다. 주전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다소를 점령하고 헬라적 요소들을 더욱 가미시켰습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주전171년 길리기아에 체류했습니다. 그는 동양적 영향보다 헬라적 요소를 고무하기 위해 다소를 헬라 자치도시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통치초기에 다소에 산업과 상업을 육성시키려고 유대 식민자들을 이주시키고 헬라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었습니다.

폼페이가 주전64년에 길리기아 속주(Province)를 재편성하였을 때 다소는 로마 정부의 사령부였습니다. 안토니는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모든 다소 주민에게 하사하고 세금을 면제해주고 자치권을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러한 특권을 더욱 확실히 보장했습니다. 다소에서 화폐가 주조되었습니다. 이웃의 길리기아 성읍들은 이러한 면에서 동과 서의 혼합지역이었습니다.

다소에는 그 밖의 Greco-Roman 도시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학이 있었습니다. 스트라보(주전63년)는 다소인들의 교육과 철학에 대한 열정은 아테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인들을 능가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길리기아 생도들은 토착민이었지 위의 두 도시의 경우에서처럼 타지에서 온 자들이 아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정치적 성향을 가진 스토아 철학자 아데노도루스(주전74년-주후7년)는 Augustus의 고문이자 교사로서 길리기아 태생이었는데, 그의 지도 아래 다소는 플라톤의 이상적인 정부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주전15년 아데노도루스(Athenodorus)가 황제와의 오랜 관계를 유지한 명성을 지닌 채 다소로 내려왔을 때 다소의 몇몇 민주적 절차들을 복원하라는 임무가 이 유능한 철학자이자 지도자에게 떨어졌습니다.

따라서 다소는 많은 시민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발전시켰습니다(행 21:39). 바울은 다소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습니다. 개종 후 약 10년간을 그곳에서 지냈습니다(행9:30/갈1:21). 다소의 복합적인 문화는 바울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엄격한 교육방침 때문에 바울은 다소의 대학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청년기 바울에게 바리새적 교육이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행22:3).

사도바울은 ‘가말리엘’Gamalihvl/Gamalliêl은 그들의 미쉬나(Mishnah)에 인용되어 있는 탁월한 타니임, 즉 교사들의 대가족 우두머리였습니다. 사도행전에 언급된 한 사람은 가말리엘 하자켄(Gamaliel ha-saqen)입니다. “장로 가말리엘”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의 조부는 원로원 의원 힐렐(Hillel)이었다고 합니다. 장로 가말리엘은 Torah에 관한 랍비의 주석서 미쉬나의 많은 구절에 인용되었습니다. 가말리엘은 교사에게 주어지는 모든 유대식 칭호 중에서 가장 높은 Rabba/on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요20:16). 그에 대한 기억은 랍비의 전승에서 가장 큰 찬사와 존경의 하나가 되어왔습니다. 초기 기독교 교회에 관하여 말한 그의 정확한 의견은 교계에서 많은 토론의 주제가 되어왔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가말리엘은 사로잡힌 사도들에 관하여 온건한 실용주의자의 입장을 주장하였습니다. 가말리엘은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의 군중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가말리엘이 자기의 선생이라고 주장할 때에 언급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이름을 자기 자신의 경우 가말리엘의 방침이 군중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은근한 암시로서 언급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바울사도는 출신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앞길이 푸르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복음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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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유대인들(사도행전21:27-36)

유대인들이 성전 밖으로 바울을 끌고나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분노한 군중들이 밀고 들어와 성전에서 바울을 살해할까 두려워했습니다. 죽여도 밖에서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주의자들은 제 나름대로 율법을 지킨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으면서도 법대로 산다고 자부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면은 바울로 하여금 제단 뿔을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전의 제단 뿔을 잡고 있는 한 절대로 죽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마성을 드러냈습니다. 이전에도 스데반집사를 죽였었습니다. 성전에 이방인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정식으로 재판도 하지 않고 에베소에서 온 거짓증인의 말만 믿고 온 예루살렘이 소동이 나서 바울을 죽이려고 작정하고 에워쌌습니다. 그래서 미친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저마다 주먹만한 돌을 들고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소동은 곧 로마의 주둔군에게 알려졌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의 수비대는 안토니아 요새를 본부로 삼았습니다. 안토니아 요새는 헤롯대왕이 세웠습니다. 안토니아 요새에는 보병이 760명, 기병이 240명이었습니다. 이들 군인들은 소요진압과 치안과 질서를 유지함을 주목적으로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천부장에게 소요소식이 들렸습니다. 즉시 백부장들과 군사들을 거느리고 소요진원지로 내려갔습니다.

천부장은 우선 바울을 잡아서 묶었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취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쇠사슬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며 어떤 일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로, 어떤 사람은 저 말로 횡설수설했습니다. 소동만 크게 일어났지 천부장은 실상을 알 수 없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친 유대인들은 계속 바울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바울을 들어서 영문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옛말에 무식한 자가 용감하면 큰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고집을 피우고 끝까지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거슬리면서 진리를 지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두려운 것입니다. 만일에 이들에게 권력이 주어진다고 하면 히틀러나 무쏠리니 그리고 일본의 천황이라고 하는 작자들처럼 됩니다. 바울을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주님께서 폐기처분한 율법 때문입니다. 쓰레기통에 버려할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진리에서 벗어나면 쓸데없는 것들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진리인양 수호하려고 합니다. 실은 진리가 아닌데 진리인양 생각하고 앞으로 나가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거슬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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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역한 유대인들(사도행전21:27-36)

바울사도는 야고보의 중재에 의해서 유대의 결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결례일이 끝나갈 무렵에 예루살렘성전 뜰에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소아시아 특히 에베소지방에서 소동을 일으켰던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자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선동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사도가 3년간을 사역하면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적으로 간주해서 살해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좋은 기회를 포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사람 드로비모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드로비모’Trovfimo"/trôphmos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드로비모는 에베소의 이방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바울과 동행했습니다(행20:4), 그리고 예루살렘교회에 줄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동행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인 드로비모가 이스라엘의 뜰(Court of Israel)에 바울과 함께 있을거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의 뜰’에 들어가는 것은 사형을 당할만한 범죄였습니다. 하지만 성전의 바깥뜰에는 이방인들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방인들이 성전의 안뜰에 들어갈 때는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로마당국조차도 유대인의 종교적인 금기사항을 지킬 정도였습니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당시 로마의 총사령관인 디도(Titus)가 예루살렘성전 경비병들에게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주지시켰다는 것입니다. 설령 로마시민이라고 할지라도 금지된 지역 안으로 들어갈 때는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에베소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소동을 일으키며 그 뜻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성이 발칵 뒤집히다시피 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 있습니다. 천사들입니다. 그리고 마귀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반면에 마귀는 사탄의 편에서 사탄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사주를 받는 존재들이 또한 존재합니다. 교회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을 끌고 간 유대인들이 사탄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명분을 가지고 일합니다. 자신들은 율법에 충실하고 유대인으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전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은 성전을 심히 더럽히는 자들입니다.

사람이 의식화되고 정형화되면 다른 것들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한번 박혀버린 사상이 그래서 무섭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정형화된 사상에 반하는 사람들은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을 제지할 어떤 근거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정형화로 인해서 초대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더디어졌습니다. 그러나 더욱 복음전파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을 뻔 했던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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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야고보(사도행전21:17-20)

신약성경에는 5명의 야고보/!Iavkwbo"가 등장합니다. 세배대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제인 게네사렛 호수의 어부인 야고보(막1:19,29, 마4:21, 눅5:10).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막3:18, 마10:3, 눅6:15, 행1:13). 더 어린(막15:40). 사도 유다(가롯 유다가 아님)의 아버지 야고보입니다.

바울사도가 예루살렘에서 만났던 사람이 “주의 형제”야고보입니다(갈1:19). 야고보는 예수님의 네 형제 중 맨 첫째입니다(막6:3, 마13:55). 사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생애동안 예수님을 가족으로만 알았습니다(막3:21,31). 그러다가 을 보면 야고보는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고전15:7). 야고보는 비로소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서야 예수님을 믿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주님이 형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는 주의 종으로 자신을 여겼습니다. 야고보는 초기공동체에서 특별한 권위를 소유했습니다(행12:17).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었을 때(35년경) 베드로와 야고보를 방문했습니다(갈1:18).

야고보는“세 기둥”가운데 하나였습니다(갈2:9/야고보, 요한, 베드로). 야고보는 이방인 선교와 관련한 예루살렘회의에서 바울 및 바나바와 의견을 같이했습니다(갈2:1-10, 행15:13). 야고보와 예루살렘의 장로들은 “유대주의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야고보는 회의에서 이방인선교에 어떤 조건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갈2:3-6). 이방인기독교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반면, 야고보는 유대기독교인들에게는 율법의 의식적명령의 준수를 요구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유대기독교인과 이방인기독교인간의 식탁친교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갈2:12). 예루살렘교회의 지도권은 베드로가 떠난 후 야고보에게 맡겨졌습니다. 갈라디아서2:12은 예루살렘 밖에까지 야고보의 광범위한 영향력이 미쳤음을 말합니다. 바울은 세 번째 여행에서 이방인교회의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야고보를 방문했습니다(행21:18). 유대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의로운 자”라는 칭호를 지녔습니다(Hegesippus; Clement of Alexandria). 요세푸스는 야고보가 대제사장 안나스의 예루살렘교회 핍박시 희생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안나스는 야고보를(예루살렘 교회의 다른 몇몇 교인들과 함께) 베스도가 사망하고 아비누스(62년)가 도착하기 전에 돌로 쳐 죽였다고 했습니다. Hegesippus는 야고보의 순교를, 바로 뒤이은 예루살렘 함락과 연관시켰습니다.

바울사도는 야고보에게 그간에 이방인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는지를 자세하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실 바울사도는 3차까지 여행을 하면서 성령에 이끌렸습니다. 자신의 고난과 고통은 잊다시피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류하다시피했습니다. 오직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해지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바울사도가 그렇게 해서 오늘의 우리까지 복음이 빨리 전해졌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사도들과 우리 이전의 전도자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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