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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교회의 속성/교회의 통일성(로마서1:11-15)
하나 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교회가 범교회적으로 하나 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교도와 교회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담을 허문다는 것입니다. 교회당의 담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기능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세속화되었다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교회는 하나로 통일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Roman-Catholic은 교황에게 복종하기 때문에 하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교황과 그리스도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한 성령에 의하여 세례를 받아 한 머리와 한 主를 가진 한 몸 안으로 접붙여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토대 위에 세워진 한 집이 있습니다. 한 목자를 따르는 한 양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불화와 분열은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 됨을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약의 서신서들에서 인내와 사랑을 통한 화합을 요청하는 다양한 호소들을 만나게 됩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실재(fact)인 동시에 이루어져야할 이상(ideal)입니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시기를
요한복음10:14-16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miva) 무리가 되어 한(ei|") 목자에게 있으리라
또한 주님께서 기도하시기를
요한복음17:20-23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바울사도는 그의 오랜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 매우 애를 썼습니다.
로마서15:5-6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갈라디아서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고린도전서1:10-13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고린도전서12:12-1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2:14-16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에베소서4:3-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빌립보서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골로새서3:12-14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는 하나라고 하는데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 되자’라는 슬로건에 함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저명하다고 하는 목회자들입니다. 이름이 있다고 하는 신학자들입니다. 이름만 대도 금방 알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사탄의 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합되어 있다고 하면서 실은 연합되어 있지 않은 교회는 하나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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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참된 교회를 유지했는가?(로마서1:11-15)
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의 대행적인 기구입니다. 주님의 몸 된 기구이며,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는 신성한 곳이며, 교회는 죄가 없는 곳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지상에서 어떤 곳보다 치열하게 공격하는 기구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를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Robert L. Reymond에 의하면 사도들의 시대가 지나자 곧 사도적인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 교리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타락하는 성향이 급격히 나타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알려진 세계의 많은 지역에 있던 교회들이 순수한 복음과 사도들의 가르침으로부터 급격히 떨어져 나가고 있었는데, 삼위일체의 교리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교리 면에서 결함이 있는 견해들을 신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해서도 Pelagius적이고 사제 중심적인 관점들을 채택했습니다.
Pelagianism는 영적 구원에서 인간의 노력의 우월성을 강조했습니다. 사람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의지로써 자유로이 선악을 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란 단순한 외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조상 아담의 죄는 완전히 개인적인 것에 불과하며 모든 사람에게 원죄가 있다는 설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이나 세례 등 적극적인 가치도 부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단들이 경건함을 가면으로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기도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보다 경건하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이러므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참된 교회를 규정할 수 있는 속성들(attributes)을 정의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당시에는 속성을 정의하는 움직임이 교회의 외적인 특성들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도들의 직접적인 계승자인 주교(bishop)가 다스리는 외형적인 기관으로 생각했습니다. 주교들이 참된 사도적 전통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입니다. 3세기경에 가면 몇몇 교부들은 제도로서 주교구에 강한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Carthage의 주교였던 Cyprian은 “주교들을 사도들의 참된 계승자들이라 했습니다. 주교들을 재촉해서 “주교단이라고 불리는 단체를 형성하여 교회의 일치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곧 교회의 일치는 주교들의 일치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Cyprian에게 신자됨의 시금석은 주교에게 복종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러한 복종을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원칙은 ‘Extra ecclesiam nulla salus, Salus Extra ecclesiam non est’라는 격언이 되었습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논문에서 교회를 ‘구원받은 모든 신자들의 거룩한 총회’ ‘선택받고 의롭게 된 신자들’로 정의했습니다. 어거스틴도 키프리안의 생각을 따라 사도적 권위가 주교직의 계승을 통하여 지속되어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어거스틴도 성례전적인 은혜를 베푸는 제도적인 교회를 어머니로 삼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Robert L. Reymond, 2004, 1062).
한때는 존경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전혀 존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일부교회들은 교회의 크기가 성공요소로 변해버렸습니다. 교리를 어떻게 하든, 이단들과 야합을 하든, 교회건물이 크면 큰 목사(?)로 여깁니다. 그래서 참된 교회를 유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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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세계화(로마서1:11-15)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의 교회가 신약시대의 교회와 같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교회와 신약의 교회와 오늘의 우리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에 의해서 세워졌든지, 사도바울에 의해서 세워졌든지, 어떤 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졌든지, 혹은 성도들에 의해서 세워졌든지, 교회는 하나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사도들의 권위아래 살아가는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사탄의 신랄한 공격을 받았으며, 현재도 받고 있습니다. 교회는 외형적으로 지상에 나타날 때 항상 참된 신자들 속에 악한 사람들이 끼어들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것들이 있었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교회는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권징조치를 시행했습니다.
로마서16:17-18 17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18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고린도전서5:1-5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3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2:5-10 5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찌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7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9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데살로니가후서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디도서3:10-11 10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11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요이9-11 9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11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예루살렘이 70년에 처참하게 멸망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더 이상 유대 땅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스스로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보존되어야 했습니다. 고넬료 사건을 통하여 모든 민족적인 울타리가 허물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초민족적이고 다인종적인 신자들의 공동체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뜻에서 그런지 몰라도 교회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성전 파괴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지 않으면 교회는 계속 유대에 머무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고, 피를 튀는 핍박이 계속 있었습니다. 교회의 세계화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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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교회(로마서1:11-15)
사람들은 특별한(special)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딘가 다른 사람과 차별 있게 대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같은 기차인데 일등석, 이등석, 삼등석이 있습니다. 같은 비행기인데 최고급 좌석인 First class, 고급좌석인 Business class 그리고 일반석인 Economy class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 대우를 달리합니다. 돈으로 대우를 산 것입니다. 아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25평형, 32평형, 42평형, 64평형 등이 있어서 되도록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토록 사람들은 특별하게 다른 사람들과 대우를 달리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11절과 12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Roma교회를 보기 원하는 것은 바울사도가 알고 있는 것을 Roma교회에도 알게 하여 Roma교회를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차에 안위함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피차에 안위함을 받다’ sumparakalevw/‘쉼파라칼레오’는 ‘함께 격려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수동태로 기록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격려를 받거나 위안을 받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바울사도 같은 분이라면 다른 사람의 격려를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로마교회에 바울사도는 피차 격려를 받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런 면을 볼 때 바울사도의 인격적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주 예수님을 위해서 평생을 바친 사도가 Roma교회로 인해서 격려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저 잘난 맛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의 어떤 목회자들은 마치 교황처럼 행세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가 자신처럼 되어야 한다는 뉘앙스를 주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도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교회의 지탄의 대상인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편적인 교회를 만드셨는데, 혹자들은 특별한 교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사도들 그리고 우리의 선배들이 세웠던 것을 한꺼번에 모두 갉아먹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오만이요 교만이며, 말할 수 없는 거만입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그의 백성들이 보편적 교회에 들어와서 구원 얻게 하시려는데 찬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편적이라고 하는 것은 문턱이 낮은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하다는 것은 문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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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튼튼히 하시는 주님(로마서1:11-15)
사람이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를 심히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실 바울사도는 주님께서 택하신 사람으로서 특이한 사도인 것 같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하여 택하신 사도입니다. 그래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로마제국에 바울사도같이 선교여행을 많이 하고 고난을 당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바울사도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했습니다. 바울사도의 가슴에는 주님의 교회가 어디서든지 든든히 서가는 것이었습니다.
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사도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먼저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됨이로다’(8절). 너희 로마교회의 믿음(pivsti")이 로마제국전체에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교회를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지 안하는지는 나의 하나님께서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만 할뿐만 아니라 너희교회를 방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방문하게 될 과정을 위해서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가는 이유는 많겠지만,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은사하면 은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사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들의 은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도들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령한 은사’는 그가 복음 전하는 것, 권하는 것과 예언(말씀)에 대하여 소유하였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가 얻었던 것으로 알고 있던 능력들을 말합니다(Calvin). 방언 등과 같은 어떤 특정한 은사가 아닌 영적인 견고함에 대한 은사입니다(Hendriksen).
이런 은사들을 로마교회에 나누어주고 싶은 이유를 ‘너희를 견고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피차 안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로마교회의 안위함이었습니다.
마태복음18:17을 보면 예수님께서 ejkklhsiva/‘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교회권징에 말씀하셨습니다. “공동체”에 속한 한 지체가 죄를 범하였을 때입니다. 이때 이 지체가 다른 지체의 책망을 무시하고, 또 둘 이상의 다른 지체들의 권면 역시 무시하는 경우에 어떻게 처리할까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책망한 사람(單數)이 세 번째 단계로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기를 거절한다면, 너(單數)는 그 사람을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ejkklhsiva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과감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 규정된 권징의 절차에 따라 ejkklhsiva 바깥으로 쫓겨나게 된다면 그 공동체 안의 사람들은 그 공동체 밖으로 쫓겨난 사람을 마치 “이방인이나 인기 없는 로마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 세리는 정당한 세금보다 더 많은 양을 강탈해 갔었습니다. 만약 그 세리가 유대인이라면 그는 유대사회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즉 이방인과 세리의 비유를 든 것은 회개하지 않고 출교된 죄인을 이스라엘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는 사람의 처지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분의 ejkklhsiva를 이스라엘의 참된 언약 공동체로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일반적인 이스라엘의 관례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방인이 되는 것의 반대입니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의 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ejkklhsiva는 전 세계적인 실체(worldwide entity)를 말할 뿐 아니라(마16:18), 개개의 지역 공동체를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ejkklhsiva는 메시아의 공동체이며 하나님 나라의 구속적(redemptive)인 표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스라엘”(갈6:16)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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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이방교회/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사도행전11:19)
스데반의 일로 환난을 당한 성도들이 흩어졌습니다. 11:19은 8:4의 연결점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많은 성도들이 여기저기 흩어졌습니다. 박해의 결과로 흩어졌습니다. 박해의 결과로 예루살렘교회가 흩어졌습니다. 즉 교회가 흩어졌기 때문에 복음과 증거가 함께 흩어졌습니다.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의 일부는 페니키아(Phoenicia)해안을 따라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들이 찾아간 베니게(Foinivkh (phoinîkē/포이니케)는 사도시대에 수리아 영토의 한 지방이었습니다.
몇몇은 배를 타고서 구브로(Cyprus)로 갔습니다. ‘구브로’(Kuvpro")/Kûpros/퀴프로스)는 지중해에 있는 섬입니다. 구브로는 길리기아와 시리아 사이에 위치한 매우 비옥하고 쾌적한 섬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깃딤”으로(창10:4) 불렸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파송한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이 구브로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행13:4). 바나바는 제2차 전도여행 전날 밤에 마가 요한의 문제로 바울과 떨어져 마가와 함께 구브로를 방문했습니다(행15:39).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면서 배타고 구브로를 지나갔습니다(행21:3). 제4차 전도여행 초기에도 구브로 해안을 항해하여 지나갔습니다(행27:4).
예루살렘을 떠난 일부는 계속 해안을 따라서 안디옥(Antioch)에 이르렀습니다. ‘안디옥’(!Antiovceia)/Antiôcheia/안티오케이아)은 수리아의 안디옥이 있고, 비시디아의 안디옥이 있습니다(행13:14). 수리아의 안디옥은 셀류코스(Seleucus)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그의 부왕인 안티오쿠스(Antiochus)를 기념하여 명명되었습니다(주전300년). 안디옥은 주전64년에 폼페이에게 망하였고, 폼페이는 이 도시를 자유도시로 만들었습니다. 수리아 지방의 로마 수도가 되었으며, 제국의 제3의 대도시가 되었습니다. 안디옥에는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살았고 유대인들도 거기 살았습니다.
F. F. 브루스에 의하면 안디옥은 자유분방한 성도덕으로 유명하다고 했습니다. 그 원인은 5마일 떨어진 다프네에 있는 아르테미스와 아폴로 숭배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함께 벌어지는 음행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도시가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이 이방인기독교 중심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의 안디옥이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예루살렘교회일 수 있고, 이방의 모든 교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313년 콘스탄틴황제가 기독교를 공인 후에 예전과 건물에 신경을 썼듯이 현재 건물과 세속에 너무 물들어있지 않은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엎어진 한국교회의 위상 누가 세웁니까? 정부입니까? 각종 기독교단체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교회의 정체성을 세워야 합니다. 회개하고, 앞으로 나아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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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를 기다리는 고넬료의 자세(사도행전10:24-33)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막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인과의 교제를 막으셨습니까?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베드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보고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고넬료를 만나고서 확실해졌습니다.
고넬료는 전술한 바와 같이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고넬료를 칭찬합니다. 고넬료는 성령의 말씀을 듣고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도착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집안의 하인 둘과 경건한 부하 중에 경건한 사람 하나를 보냈습니다(7절). 베드로가 오는 사이에 고넬료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습니다. 심지어는 베드로가 들어오니까 그의 발 앞에 절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바로 저지했습니다. 그만큼 고넬료는 경건하여 유대인들보다 더욱 하나님의 백성다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덕목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사무엘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물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신13:4, 삼상28:18), 주의 명령과 경계의 말씀입니다(느9:34, 신30:8).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롬6:17,19). 마음과 성품을 다해야 하며(신26:16, 30:2,10).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민32:11,12,신1:36). 하나님께서 명한대로 순종해야 합니다(왕상9:4,11:38). 즐겨 순종해야 합니다(사1:19).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롬 6:17, 엡6:5).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합니다(고후2:9, 골3:20).
하나님께 우리가 왜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손과 땅의 복을 받으며(창26:4,5),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신30:2,3),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약1:25). 그리스도 사랑 안에 거합니다(요15:10).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출19:5,6), 자손까지 복을 받습니다(신5:29).
우리는 하루 중에 수십 가지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의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날마다 벗어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지나갑니다. 어쩌면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행동입니다.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고넬료는 지배국의 군인으로서 피지배국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들을 고넬료는 해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이래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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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다와 사론에 이른 주님의 복음(사도행전9:32-35)
‘룻다’는 사론평야에 있는 마을입니다. ‘룻다’는 후에 Diospolis로 불렸습니다. 룻다는 쾌적한 유명한 도시로 지중해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위치했습니다. 그 근방에는 바위가 많았지만 욥바(Joppa)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는 큰 암석위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현재는 Japhet(야펫)이라고 부르는 항구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8:25에서 요한과 함께 사마리아에서 돌아온 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복음의 위력만큼 대단한 힘을 가진 사상은 없습니다. 이제 복음은 얼마 되지 않아 서부 팔레스틴 지역에 이미 도달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박해 때에 피하여 도망 온 사람들이 이곳에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룻다에 애니아라 하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니아가 중풍으로 8년이나 침상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데 8년이나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Aijneva, ija'taiv se jIhsou'" Cristov": ajnavsthqi kai; strw'son seautw'/.
아이네아 이아타이 세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아나스테싸이 카이 스트로손 세안토
베드로는 8년간을 침상에 누워있는 애니아에게 말놀이(word-play)를 합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는 것입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베드로가 한 말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자신이 한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서기전까지는 기적을 베풀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을 의존하는데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베드로는 생각 없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애니아는 그 말에 바로 반응을 했습니다. 곧 일어났습니다(eujqevw" ajnevsth/에우쎄오스 아네스테/곧 그녀가 일어났다.). 베드로는 말했고, 애니아는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병이 나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룻다와 사론에 있는 사람들이 주께로 더 돌아 왔습니다. 이 일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날 첨단의 무기들이 가공할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무기들이 마하(음속)이상의 속도로 어떤 지역을 초토화할 만큼의 위력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국가를 지키기위해 만든 무기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보다 더 큰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하가 아니라 빛의 속도로, 어떤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복음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지,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살리는 핵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교회는 성도들입니다. 건물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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