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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시민권(사도행전22:24-29)

 

오늘날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이란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가지고 있는 증명서입니다. 주민등록은 보호와 통제입니다. 따라서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헌법에 따라야 하고, 반면에 외국인과 달리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피’와 ‘귀화’입니다. 그 나라 국민에게서 태어나면 태어나자마자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귀화’는 외국이면서 한국의 국적을 갖고 싶을 때 귀화법에 적용된 사람들을 절차에 의해서 국민으로 받아들인 사람을 말합니다. 태어나기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귀화를 했다면 한국민의 적용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시대의 시민은 주로 Greece와 Roma의 시민권에 대해서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Greece와 Roma의 시민권을 적용시키는데 달랐습니다. Greece의 도시국가인 Athens는 ‘피’가 시민권을 가늠했으며, 반면에 Roma는 ‘뜻을 같이하는 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습니다.

로마인이야기를 쓴 Shiono Nanami에 의하면 Athens인들은 Athens 영토 안에서 둘 다 Athens 태생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만 ‘아테네 시민’이었습니다. Athens의 황금시대를 쌓아올린 대정치가 페리클레스(Perikles/주전495-주전429)도 두 번째 배우자가 Miletus 태생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Athens시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Perikles가 세운 업적에 보답한다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아서 겨우 시민권을 얻었다고 합니다.

부모가 둘 다 Athens 태생인 Socrates는 Athens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Macedonia 태생인 Aristoteles는 뤼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창설하는 등 Athens 문화 창달에 크게 이바지했는데도 시민권이 없었습니다. Athens가 이렇게 폐쇄적인 이유는 Athens가 민주정체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정체는 모든 유권자가 평등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국 출신에게도 평등한 권리를 주면 기존시민들의 반발을사서 언젠가는 사회불안의 원인이 될 게 뻔합니다. 그래도 민주정체를 시행하는 한. 시민은 모두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Athens는 쇄국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Athens의 선착장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자도 시민이었는데, 서양 철학사의 거봉인 Aristoteles는 Athens에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Greece어를 사용하는데도 Sparta나 Corinth 태생에게는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Athens 태생은 Sparta나 Corinth 시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Roma인의 정책은 동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Roma인은 정복한 족속들을 몰살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Roma인으로 동화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씨저가 정복한 갈리아 부족장들을 원로원에 들여놓았습니다. 의료나 교육에 종사하는 자라면 피정복민족이든 피부색이 다르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속주민 병사들이 25년의 병역을 마치면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법을 제정했습니다. 황제들은 제국전역의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서 Roma시민권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주후212년에 Caracalla 황제는 Roma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시민권을 준다는 법령을 발포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Roma의 시민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Roma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정죄 즉 재판을 받지 않고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날 때부터 로마시민이었습니다. 천부장은 돈으로 Roma시민권을 샀습니다. Roma시민권이 없는 줄 알고 채찍질을 하다가 천부장에게 보고하고, 천부장은 곧 달려와서 결박을 풀었습니다. 그만큼 Roma시민권은 위력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Roma시민권은 부모가 Roma시민이면 그 자녀도 Roma시민이었습니다. 또한 Roma를 위해 크게 기여한 사람들에게 그 대가로 Roma시민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서 Roma시민권을 샀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은 미국의 국적을 얻으려고 안달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고위직과 돈 있는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미국의 국적을 얻으려고 야단법석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시민권은 사람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 붙잡혀있든지 최선을 다해서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을 위해서 시민권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영달과 안녕을 위해서입니다. 시민권을 가지되 사용처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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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받은 대로(사도행전22:4-16)

 

사도행전22:17-21 17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바울사도는 회심하자마자 바로 전도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3년간 아라비아사막에서 주님과 교제를 했습니다. 바울사도의 회심직후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파함(9:19-22)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아라비아에 3년간 머물렀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옴/ 갈라디아서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핍박으로 다메섹을 탈출함/사도행전9:23-25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내리니라

고린도후서11:32-33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15일간 예루살렘을 방문함/사도행전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갈라디아서1:18-19 그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일을 유할쌔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바울사도는 회심 후에 예루살렘에 있는 헬라파 유대인들과 격렬한 논쟁을 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바울사도에게 많은 적의가 있었습니다. 바울사도가 유대인의 대표로서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열심히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변절자로 여기며 심히 공격했습니다. 바울에게 심한 적의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는 예루살렘에 머물러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렸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도를 전한다고 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의 일과 다메섹의 일을 주님께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예루살렘사람들은 듣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사도는 예루살렘의 전도를 접어야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해외선교사로, 어떤 사람은 국내의 목회자로, 어떤 사람들은 직장의 선교사 등으로 각각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가장 잘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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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사도행전22:4-16)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14절)

아나니아는 바울사도가 다메섹에서 제일먼저 만난 사람입니다. 이미 성령께로부터 사울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에 사울에 대한 루머를 일축하고 사울에게 하나님의 사명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을 바울에게 그냥 하나님으로 말하지 아니하고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묘사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바울)에게 우리조상들의 하나님으로 묘사함에 따라 그리스도의 도가 신흥종교가 아닌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고 구약시대부터 약속된 도(道)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그리스도의 도를 믿는 우리들을 유대인들은 심히 오해를 했습니다. 마치 신약시대에 처음으로 생긴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아브라함과 다윗과 선지자들을 말씀하셨어도 그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했던 것입니다. 또한 ‘천주교는 큰 집이고 기독교는 작은 집이다’고 하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오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온갖 미신들을 혼합시키고 살을 불렸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갔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 또는 로마교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로마 카톨릭에 있었다가 종교개혁을 해서 마치 로마 카톨릭은 구교, 개신교는 신교로 그들(로마 카톨릭)이 조롱하는 말로 썼던 용어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루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심하게 오염되고 변질된 로마교를 떼어내고 홀로서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큰집, 작은집 하고 운운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이후 모든 성도들은 ‘저 의인’을 보는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말한 ‘저 의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저 의인입니다. 이 의인 때문에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자들이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관원들이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자들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왜 스데반이 기쁨으로 그 의인을 위해서 순교를 당했는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에서 막강하게 종교권을 행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을 전혀 몰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들이 모세의 자리에 올라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교권주의자들은 모세의 자리에 많이 앉아있습니다. 분명히 다른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에게 면책권을 주기도 하고, 자기마음대로 전횡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를 당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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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출생과 배경(사도행전22:2-4)

22:2-21은 3-4절은 바울의 출생과 배경, 5-16절은 바울의 회심, 17-21절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변증하고 있습니다.

어떤 타국인이 우리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데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한다면 아마도 말할 동안에는 조용히 할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바울을 죽이려 했던 폭도들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바울사도의 말을 일단 들어보자는 것입니다.

바울은 ‘길리기아’Kilikiiva/Killikiîa ‘다소’tarsov"/tarsôs 출신이었습니다. 길리기아는 소아시아의 한 지역입니다. 다소는 길리기아의 수도입니다. 바울이 다소에서 출생했습니다. 다소는 유속이 빠른 키드누스 강변의 도시입니다. 지중해에서 16km, 타우루스 산맥에서 남쪽으로 48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했습니다. 다소는 소아시아의 산맥의 녹은 눈으로 이루어진 차가운 강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평원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해수면 위로 21m되는 지점에 위치한 이 도시 아래에 항구호수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지중해 선박이 접근하기 용이하고 안전한 곳입니다. 이 독특한 수로 때문에 다소 내륙은 해상 무역이 번창하였습니다.

주전41년에 이 내륙 호수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를 만나 사랑에 빠진 장소입니다. 유브라테스로부터 시작되는 고대 무역로가 안디옥 및 다소에서 동쪽으로 80km 되는 동지중해의 대로와 결합하여 길리기아 중앙을 통과하여 북으로 돌아 다소산맥을 통과 소아시아의 고지에 이릅니다. 다소인들과 그 이웃들은 주전1,000년에 이 고지대로 가는 자연상태의 협소한 통로를 넓히기 위해 암벽을 깎아서 뚫는 위대한 공학적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이 성문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악 통로 중 하나입니다. 육지의 대로와 바다의 길로 인해 다소는 동과 서가 만나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아래서 다소는 총독의 지배권이었습니다. 크세노폰은 다소를 “위대하고 번영한 도시”라고 했습니다. 주전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다소를 점령하고 헬라적 요소들을 더욱 가미시켰습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주전171년 길리기아에 체류했습니다. 그는 동양적 영향보다 헬라적 요소를 고무하기 위해 다소를 헬라 자치도시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통치초기에 다소에 산업과 상업을 육성시키려고 유대 식민자들을 이주시키고 헬라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었습니다.

폼페이가 주전64년에 길리기아 속주(Province)를 재편성하였을 때 다소는 로마 정부의 사령부였습니다. 안토니는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모든 다소 주민에게 하사하고 세금을 면제해주고 자치권을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러한 특권을 더욱 확실히 보장했습니다. 다소에서 화폐가 주조되었습니다. 이웃의 길리기아 성읍들은 이러한 면에서 동과 서의 혼합지역이었습니다.

다소에는 그 밖의 Greco-Roman 도시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학이 있었습니다. 스트라보(주전63년)는 다소인들의 교육과 철학에 대한 열정은 아테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인들을 능가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길리기아 생도들은 토착민이었지 위의 두 도시의 경우에서처럼 타지에서 온 자들이 아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정치적 성향을 가진 스토아 철학자 아데노도루스(주전74년-주후7년)는 Augustus의 고문이자 교사로서 길리기아 태생이었는데, 그의 지도 아래 다소는 플라톤의 이상적인 정부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주전15년 아데노도루스(Athenodorus)가 황제와의 오랜 관계를 유지한 명성을 지닌 채 다소로 내려왔을 때 다소의 몇몇 민주적 절차들을 복원하라는 임무가 이 유능한 철학자이자 지도자에게 떨어졌습니다.

따라서 다소는 많은 시민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발전시켰습니다(행 21:39). 바울은 다소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습니다. 개종 후 약 10년간을 그곳에서 지냈습니다(행9:30/갈1:21). 다소의 복합적인 문화는 바울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엄격한 교육방침 때문에 바울은 다소의 대학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청년기 바울에게 바리새적 교육이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행22:3).

사도바울은 ‘가말리엘’Gamalihvl/Gamalliêl은 그들의 미쉬나(Mishnah)에 인용되어 있는 탁월한 타니임, 즉 교사들의 대가족 우두머리였습니다. 사도행전에 언급된 한 사람은 가말리엘 하자켄(Gamaliel ha-saqen)입니다. “장로 가말리엘”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의 조부는 원로원 의원 힐렐(Hillel)이었다고 합니다. 장로 가말리엘은 Torah에 관한 랍비의 주석서 미쉬나의 많은 구절에 인용되었습니다. 가말리엘은 교사에게 주어지는 모든 유대식 칭호 중에서 가장 높은 Rabba/on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요20:16). 그에 대한 기억은 랍비의 전승에서 가장 큰 찬사와 존경의 하나가 되어왔습니다. 초기 기독교 교회에 관하여 말한 그의 정확한 의견은 교계에서 많은 토론의 주제가 되어왔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가말리엘은 사로잡힌 사도들에 관하여 온건한 실용주의자의 입장을 주장하였습니다. 가말리엘은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의 군중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가말리엘이 자기의 선생이라고 주장할 때에 언급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이름을 자기 자신의 경우 가말리엘의 방침이 군중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은근한 암시로서 언급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바울사도는 출신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앞길이 푸르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복음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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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에도 불구하고/폴리갑(사도행전21:7-14)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었던 Polycarp/Poluvkarpo"은 사도요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Ignatius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Polycarp은 Ignatius가 로마로 압송되는 107년경에 이미 서머나교회 감독이었습니다. Polycarp과 Ignatius는 매우 긴밀한 관계였습니다. Polycarp은 사도요한의 제자로 Irēnaeus와 Tertulliān이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Polycarp은 영지주의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137년에는 이단 Mārkion과 대항해서 싸웠습니다. Polycarp은 Mārkion이 소아시아 지방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Mārkion은 137년경에 Hierapolis의 감독 Pāpiās와 Polycarp의 인정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둘다 Mārkion을 배척했으며, Polycarp은 Mārkion을 사탄의 장자라 했습니다. Polycarp은 155년경 로마를 방문하여 로마교회의 감독 Anīcētos와 부활절의 시기문제로 논쟁을 벌렸습니다. Polycarp이 로마를 방문한 것은 로마의 교인들 가운데 소아시아 출신의 교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Polycarp과 Anīcētos 사이의 부활절논쟁은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로 아무 결론도 없이 끝냈습니다.

Polycarp은 80년에 태어나 165년경에 순교할 때까지 86년동안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사도들과 후 사도시대를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했습니다. Polycarp은 사도요한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Ignatius의 서신들을 모으고 보존하였습니다. Ignatius의 순교는 Polycarp에게 큰 도전과 용기였습니다. 죽음 앞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그날이 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초연하고 담담한 Ignatius의 신앙에 도전을 받은 Polycarp은 자신도 언젠가는 순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Polycarp은 Marcus Aurelius 때인 165년 경에 순교하였습니다. Polycarp의 순교에 대한 서머나인들의 편지에 의하면 “내가 86년동안 그 분의 종으로 살아왔지만 그분은 결코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마지막 회유를 단호히 거절하고 순교를 딩했습니다.

Polycarp의 순교는 유명합니다. Polycarp이 발걸음을 옮기자 총독은 Polycarp인지 물었습니다. Polycarp이 그렇다고 하자 총독은 고소를 거부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총독의 회유의 말입니다. ‘황제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태도를 바꾸라. 그리고 무신론자들을 없애 버리라. 이야기하라’고 덧붙이면서 총독은 ‘너의 나이를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Polycarp은 운동장에 모인 군중을 쳐다보면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는 너희들의 신을 믿지 않으니,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 층독은 강요했습니다. ‘맹세하라. 그러면 너를 자유롭게 해주겠다. 그리스도를 저주하라. ’ Polycarp은 ‘86년 동안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그는 나를 나쁘게 대한 적이 전혀 없다. 나를 구원해 준 나의 왕을 내가 어떻게 욕할 수 있겠는가?’ 총독은 ‘나는 사나운 맹수들을 가지고 있다. 만일 네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너를 그 맹수에게 던질 것이다’고 했습니다.

Polycarp은 ‘맹수들을 불러라.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면 태도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잔인함에서 정의로 바꾸는 것운 훌륭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총독이 ‘네가 맹수들을 얕잡아 보고, 또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화형에 처하겠다’라고 했습니다. Polycarp은 ‘당신이 위협하는 그 불은 잠시 타다가 곧 꺼진다.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불이 있다. 즉 장차 임할 정의의 불과 영원한 형벌의 불 그리고 불신자들을 위해 예비된 불이 그것이다. 왜 당신은 주저하는가? 당신이 원하는대로 행하라’ 그리고 곧 이어 화형에 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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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설교/그리스도를 예비함(사도행전13:16-22)

왕은 좋은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 국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들의 머리요, 한 국가의 최고통치자이기 때문에 왕을 하려고 과거에도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임기가 매우 짧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왕을 선호하다보니까 궁중에서 암투가 심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왕자들은 왕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자리는 하나고, 왕을 하기는 해야겠고, 해서 쿠데타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왕의 임기가 짧았습니다. 왕을 한번 하면 죽을 때까지 하는 자리인데 그렇게 주변에서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오래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국가조차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전란과 변란으로 인해서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 두 부류의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사도는 설교를 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내용을 다윗 왕까지 말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오랜 세월을 섭리하셨는가를 말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많은 나라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선택하실 때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이 세상을 치료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에덴에서 파괴된 이 세상을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치료하고자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양육하셨습니다. 250만-300만 명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키우셨습니다. 애굽에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큰 권능(meta; bracivono" uJyhlou'/메타 브라키오노스 휩셀루)으로 빼내셨습니다. 문제는 광야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보내주신다고 해도 이스라엘은 믿지 않았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서 건너야한다고 하면서 스파이를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의 스파이보고를 받고 좌절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40년을 방황하다가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내하셨습니다. 결국 믿음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가나안의 강한 족속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약450년간). 사무엘 선지자때까지 사사를 주셨습니다. 그들이 왕을 구하자 하나님께서 기스의 아들 사울을 왕으로 40년간 세우셨다가 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새의 아들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며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삼상13:14, 시89:20)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의 선택에서 다윗의 선택까지의 요지를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요약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 땅에 오셔서 역사하셨음을 말하고자 회당장이 읽은 성경에 답을 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전하는 것이 곧 예수그리스도요, 복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예수를 전하고자 말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복음이요, 복음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의 구원자요, 사람을 살리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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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교회의 구성원들/바나바(사도행전13:1)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들을 미리 아는 선지자들, 그리고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가르치는 면에 있어서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Calvin). 선지자의 원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상을 보거나 환상, 또는 꿈 그리고 말씀으로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교사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1절에서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안디옥교회에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 등입니다.

바나바(Barnavba"/barnâbas/바르나바스)는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바나바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졌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름대로 ‘위안의 아들’입니다. 누가의 기록처럼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입니다. 거기에 바나바는 설득력까지 있었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사도들’이라 칭하였습니다(사도행전14:1-14). 전승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이 파송한 70인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누가복음10:1). 초대 교부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eria)는 바나바가 70인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으며, 그의 지상전도 사업에서 그를 수행했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12제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초기기독교 사도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중심적인 인물입니다(사도행전11:19-15:41). 바나바는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지상에 내려오신다면 바나바와 같은 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나바는 예수가 죽은 직후 예루살렘교회에 들어온 구브로인 가정에서 태어난 유대계 헬라인으로 추정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구브로 섬에 정착해 살고 있었는데, 성령강림절에 사도들이 제각기 여러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바나바는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구브로에서 왔다가, 베드로가 자기 민족의 방언으로 복음을 설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바나바는 기독교인이 된 이후 사도들에 의해 붙여진 별칭입니다(행4:36). 유대인 태생으로 레위족속이었던 요셉이라는 이름은 나중에 “권고의 아들” 혹은 “훈계의 아들”,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그에게 그런 이름을 부여했던 것은 그의 마음과 생활이 친절했고, 관대한 마음과 돕고자 하는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바울 간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의 헌신적이고, 고귀한 정신은 조금도 시기심이나 질투심이 없었습니다. 바나바의 생애의 경력을 보면 인정 많고 친절한 성향입니다. 바나바는 동료 바울과 같이 탁월한 지성이나 독창적이거나 창조적인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초대교회에서 마치 천사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사랑과 신뢰를 받으며 항상 널리 인간의 이익을 구하는 입장에 서있어, 사회적 영향력을 얻어 초대 교회에서 탁월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자신의 깃 아래 보호하고 바울의 첫 동료가 되어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언급될 경우 바나바가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를 파송한 안디옥교회가 그에게 그만한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점차 두각을 드러내게 되면서 바나바는 서서히 뒷자리로 물러나 이야기의 전면에서 사라집니다. 오늘의 교회에서 바나바 같은 사람들은 필히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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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사도행전9:19-22)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신이 났었을 것입니다. 보기 싫은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체포해서 본국으로 송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정통유대인으로 각광을 받고, 촉망을 받는 인물이라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그렇게 살아왔고, 다메섹에 그러한 이유로 왔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에 있는 유대들은 아직 사울의 상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사흘이나 식음을 전폐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성령과 아나니아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점점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날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각 회당을 다니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습니다. 사울의 이 말은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말이요, 인정하기 싫은 말입니다. 따라서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22절을 보면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이 말하는 것에 대해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데, 이 사람이 사울이 맞아? 다메섹에 온 이유가 뭐야, 저들을 잡아가려고 오지 않았나?’ 주님께 잡힌 사울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울은 자신을 부른 주님의 이름을 힘있게 전파했습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다메섹에서는 사울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정작 도착해서 하는 말이 예수는 그리스도라(메시아) 전파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과 달리 교회는 이로써 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교회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主(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크고 작음이 없이 모두 교회입니다. 사실 사람들보기에 크고 작은 것이지, 교회는 대소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교회자랑이 아닙니다. 교회표어의 자랑이 아닙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다’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축복, 복이 교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보여지는 물질의 복이 전부였다면, 열 두 제자들은 최고로 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도 부자가 없었고, 모두 순교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님의 제자들을 복된 자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계속 전파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 사울이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 우리들이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 교회를 이 땅에 세우셨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 오늘 우리들을 이 땅에 존재케 하십니다. 우리를 반대하든지 안하든지, 어디에서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끝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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