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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사도행전21:1-6)
바울사도는 밀레도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바로 출발하여 고스(Cos/헬리가니소스 근처 소아시아 남서쪽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이 많은 섬으로 주전5세기에 히포크라테스/Hippokratēs가 이곳에 의술학교를 세움)로 갔습니다. 다음날에 로도(Rhodes/크레테와 소아시아 서남단 사이에 위치한 큰섬으로 당시에 이곳은 여가를 즐기고 학식을 나누는 유흥지임)를 거쳐 바다라(Patara/소아시아 남부 루기아의 항구도시로 바람이 순조롭기 때문에 페니키아로 가는 배를 타기에 적절한 곳)로 갔습니다. Patara에서 페니키아(Phoenicia)로 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Cyprus/구약성경에서 ‘깃딤’(창10:4, 민24:24, 사23:1)으로 불렸던 구브로는 지중해의 매우 비옥하고 쾌적한 섬으로서 길리기아와 시리아 사이에 위치)를 바라보며 Syria(수리아는 북쪽으로 타우루스 및 아마누스 지역과 접하며 동으로 유브라데와 아라비아, 남으로 팔레스틴, 서로 페니키아 및 지중해와 접경을 이룬다. 시리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주로 ‘아람’으로 언급됨)로 가다가 두로(Tyre)에서 상륙했습니다. 두로에는 이미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제자들을 찾아서 7일을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성령에 감동되었습니다.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성도들이 성문 밖 바닷가에까지 나와서 전송할 때 역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가이사랴에 가기위하여 배에 올랐습니다. 바울사도는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갔습니다. 한 성령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가지 말라고 하고 바울사도는 가겠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Calvin은 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말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그분께서 승인하셔서 바울로 하여금 자기들이 예언의 영에 의해 말하고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 행을 중단할 경우 얼마든지 개인적인 안전을 스스로 깊이 꾀할 수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중단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Matthew Henry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려고 하면서 그 사건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건 전에 많은 예언을 함이 적합하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의 신앙을 해치는 대신에 그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F. F. Bruce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예언을 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큰 위험이 바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굳게 결심한 바가 있어서 전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최순봉은 바울은 그들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권고를 다시 한 번 받는다. 그러나 누가는 이에 대한 바울의 반응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 일행은 마치 아무 말도 들은 적이 없는 것과 같이 그 장소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Thompson Bible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안 제자들이 바울의 안위를 염려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예루살렘 행은 Roma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Roma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설령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도, 복음을 사랑하고 전하고자 하는 passion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해에도 불구하고/왈도파 (0) | 2016.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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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난을 예고하시는 성령님 (0) | 2016.0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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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대한 사도들의 사기(사도행전14:1-7)
사도행전 전면에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기류가 있습니다. 1:8에 주님의 명령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1:14에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2:4에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최소한 말이 다른 16개국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자신의 방언으로 사도들의 말을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대표로 베드로의 설교가 이어집니다(2:14-36). 그리고 그 말을 듣고 3000명의 제자가 늘어났습니다. 계속해서 사도들에게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 결과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또 설교후에 5000명의 제자가 더 늘어납니다(4:4). 이에 예루살렘의 실세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려고 심히 핍박을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전해졌고(4:31), 예루살렘교회가 든든히 서갔습니다(4:33). 핍박하고 별 짓을 다해도 말씀이 더해가고 제자들이 더해갔다고 했습니다. 5:42절을 보면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6장을 보면 교회는 성도들이 더해져서 일곱 집사를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을 본보기로 삼아서 예루살렘에 대박해가 일어납니다. 이 일을 계기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이방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복음이 멈추지 않습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2:47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4:31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4: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5: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6:15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7:2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8: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9:19-20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11: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11:18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11:26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11: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13: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13:48,49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14:6,7 저희가…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14:27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15: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6:14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6:34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17: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17: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7: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19: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9: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사도들은 순교하기까지 사기가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러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바울을 친 사람들 (0) | 2015.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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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드라와 더베에서의 복음전파 (0) | 2015.07.01 |
이고니온의 복음에 대한 반응 (0) | 2015.06.27 |
유대인이 버리므로 이방인에게 (0) | 2015.06.25 |
복음에 있어서 유대인들 (0) | 2015.06.24 |
바울의 설교/그리스도를 예비함(사도행전13:16-22)
왕은 좋은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 국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들의 머리요, 한 국가의 최고통치자이기 때문에 왕을 하려고 과거에도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임기가 매우 짧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왕을 선호하다보니까 궁중에서 암투가 심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왕자들은 왕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자리는 하나고, 왕을 하기는 해야겠고, 해서 쿠데타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왕의 임기가 짧았습니다. 왕을 한번 하면 죽을 때까지 하는 자리인데 그렇게 주변에서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오래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국가조차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전란과 변란으로 인해서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 두 부류의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사도는 설교를 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내용을 다윗 왕까지 말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오랜 세월을 섭리하셨는가를 말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많은 나라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선택하실 때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이 세상을 치료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에덴에서 파괴된 이 세상을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치료하고자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양육하셨습니다. 250만-300만 명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키우셨습니다. 애굽에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큰 권능(meta; bracivono" uJyhlou'/메타 브라키오노스 휩셀루)으로 빼내셨습니다. 문제는 광야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보내주신다고 해도 이스라엘은 믿지 않았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서 건너야한다고 하면서 스파이를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의 스파이보고를 받고 좌절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40년을 방황하다가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내하셨습니다. 결국 믿음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가나안의 강한 족속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약450년간). 사무엘 선지자때까지 사사를 주셨습니다. 그들이 왕을 구하자 하나님께서 기스의 아들 사울을 왕으로 40년간 세우셨다가 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새의 아들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며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삼상13:14, 시89:20)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의 선택에서 다윗의 선택까지의 요지를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요약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 땅에 오셔서 역사하셨음을 말하고자 회당장이 읽은 성경에 답을 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전하는 것이 곧 예수그리스도요, 복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예수를 전하고자 말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복음이요, 복음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의 구원자요, 사람을 살리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전해야 합니다.
바울의 설교/요한이 아니라 그리스도 (0) | 2015.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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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설교/약속하신대로 (0) | 2015.06.18 |
회당에 대하여 (0) | 2015.06.16 |
사도바울의 선교여행 (0) | 2015.06.15 |
사도행전의 주역들 (0) | 2015.06.14 |
바보에서 총독에게 복음전함(사도행전13:6-12
사울과 바나바는 살라미의 중심부로 이동했습니다. 거기에는 로마의 총독부가자리 잡고 있는 ‘바보’(Pavfo"/Pâphos)에 이르렀습니다. 바보는 구바보(Old Pâphos)와 신바보(New Pâphos)가 있었습니다. 구바보는 페니키아인이 건설했고, 신바보는 그리이스인이 건설했습니다. 살라미에는 바보가 중심지이며, 로마의 총독부가 있을 만큼 번화한 지역이었습니다. 구바보나 신바보는 종교적으로 ‘파비안느’라는 여신을 숭배했습니다. 파비안느는 시리아에서 기원한 신입니다. 파비안느는 그리이스의 아프로디테(Aphrosite)이며, 로마의 Venus(비너스)입니다. 바보는 Venus를 깊게 숭배하는 본거지였습니다. Venus의 신봉자들은 Venus가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원뿔형의 운석을 중심에 두는 감각적인 의식으로 그녀를 숭배했습니다. Venus 신전은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였습니다. 사울과 바나바는 이곳에서 총독을 만났습니다. 구브로의 총독은 세르기우스 파울루스(Sergius Paullus/서기오 바울)였습니다. 총독은 사울과 바나바를 초대하였습니다. 총독은 사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말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관심까지 가졌습니다. 누가는 서기오 바울에 대해서 ‘지혜있는 자’라고 했습니다(7). 그런데 항상 총독의 옆에서 마술을 부리던 무당 ‘바예수’가 적극적으로 방해를 했습니다. 이 자는 총독의 마음이 사도들의 교훈에 이끌리지 않도록 하기위해 방해하고 반대하였습니다. 만일에 경우 총독이 사도들의 말을 들으면 자신의 궁중마술사직이 위태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이 그를 제지하면서 궤계(기만)와 악행(분별력이 없는 행동)이 가득한자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자식이며, 의의 원수이고, 주의 바른 길을 왜곡시키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10). 그리고 얼마동안 네가 소경이 될 것이라고 하자마자 곧 바로 소경이 되었습니다. 총독은 그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총독이 믿었습니다(ejpivsteusen /epîsteusen). 또한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겼습니다( ejkplhssovmeno"/ekpllēssômenos).
이것을 볼 때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음을 우리는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철저하게 막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잔하는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이라고 해서 순탄하게 전해지지 않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대사도인 바울사도가 전하는데도 그러니 우리들은 당연히 더 인식하여야 합니다. 지상에는 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측과 그 반대 측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결국은 마귀와 그 일당들은 손을 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9절에 ‘성령이 충만하여…’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사울과 바나바와 마가요한만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신 것입니다.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비록 우리들이 부족하고 연약해도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우리는 늘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기이히 여긴다는 말 (0) | 2015.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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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바울 (0) | 2015.06.10 |
땅 끝까지의 시작점 구브로 (0) | 2015.06.06 |
성령의 지시하심 (0) | 2015.06.04 |
안디옥교회의 구성원들/마나엔 (0) | 2015.06.03 |
안디옥교회의 구성원들/바나바(사도행전13:1)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들을 미리 아는 선지자들, 그리고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가르치는 면에 있어서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Calvin). 선지자의 원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상을 보거나 환상, 또는 꿈 그리고 말씀으로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교사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1절에서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안디옥교회에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 등입니다.
바나바(Barnavba"/barnâbas/바르나바스)는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바나바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졌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름대로 ‘위안의 아들’입니다. 누가의 기록처럼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입니다. 거기에 바나바는 설득력까지 있었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사도들’이라 칭하였습니다(사도행전14:1-14). 전승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이 파송한 70인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누가복음10:1). 초대 교부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eria)는 바나바가 70인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으며, 그의 지상전도 사업에서 그를 수행했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12제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초기기독교 사도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중심적인 인물입니다(사도행전11:19-15:41). 바나바는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지상에 내려오신다면 바나바와 같은 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나바는 예수가 죽은 직후 예루살렘교회에 들어온 구브로인 가정에서 태어난 유대계 헬라인으로 추정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구브로 섬에 정착해 살고 있었는데, 성령강림절에 사도들이 제각기 여러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바나바는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구브로에서 왔다가, 베드로가 자기 민족의 방언으로 복음을 설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바나바는 기독교인이 된 이후 사도들에 의해 붙여진 별칭입니다(행4:36). 유대인 태생으로 레위족속이었던 요셉이라는 이름은 나중에 “권고의 아들” 혹은 “훈계의 아들”,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그에게 그런 이름을 부여했던 것은 그의 마음과 생활이 친절했고, 관대한 마음과 돕고자 하는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바울 간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의 헌신적이고, 고귀한 정신은 조금도 시기심이나 질투심이 없었습니다. 바나바의 생애의 경력을 보면 인정 많고 친절한 성향입니다. 바나바는 동료 바울과 같이 탁월한 지성이나 독창적이거나 창조적인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초대교회에서 마치 천사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사랑과 신뢰를 받으며 항상 널리 인간의 이익을 구하는 입장에 서있어, 사회적 영향력을 얻어 초대 교회에서 탁월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자신의 깃 아래 보호하고 바울의 첫 동료가 되어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언급될 경우 바나바가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를 파송한 안디옥교회가 그에게 그만한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점차 두각을 드러내게 되면서 바나바는 서서히 뒷자리로 물러나 이야기의 전면에서 사라집니다. 오늘의 교회에서 바나바 같은 사람들은 필히 필요합니다.
안디옥교회의 구성원들/마나엔 (0) | 2015.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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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교회의 구성원들/니게르라 하는 시몬 (0) | 2015.05.31 |
베드로와 바울에 의한 복음전파 (0) | 2015.05.26 |
바나바와 사울의 동향 (0) | 2015.05.25 |
뻗어나가는 하나님의 말씀 (0) | 2015.05.23 |
유대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사도행전10:34-43)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척이나 증오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 인측으로 볼 때 이방인보다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듯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에서 갈릴리를 가려면 사마리아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가깝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먼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사마리아는 통과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rm]vo/Shômerowm쇼므론)의 뜻은 ‘감시산’이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에 의해 동일 이름의 산(암6:1) 위에 건설된 도시입니다(왕상16:24). 에브라임 지파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왕국의 수도였으며 이스라엘의 왕들의 거처였습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왕 살만에셀Ⅳ에 의해 3년 동안 포위되었었습니다. 그 후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사르곤(Sargon)이 사마리아를 주전722년에 탈취하여 유린하였습니다. 이때 사르곤은 이스라엘의 10지파를 국외로 추방하고 그 자리를 다른 이주자들로 채웠습니다(왕하 17:5,24, 18:9). 따라서 사마리아는 순수한 유대인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혼혈인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정통유대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무척이나 혐오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대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간 베드로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과의 막힌 담을 허무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접근하는 것은 파격이었습니다. 사실 누가도 이방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34). 어떤 나라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했습니다(35). 주님으로 인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36). 갈릴리에서 시작된 복음이 유대에 퍼져나간 것을 봐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때 성령을 기름 붓듯이 부으셔서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쳤습니다.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결국 부활하신 예수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죄를 용서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지상에서 최상의 상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상품은 전할 때 받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그 선물을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절은 자유지만, 그 결과는 옵션이 아닙니다. 그 선물은 성령과 함께 주어집니다. 성령괴 함께 갑니다. 이미 유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받았습니다. 에디오피아 사람도 받았습니다. 다메섹사람들도 받았습니다. 이제 고넬료 같은 이방인들도 받았습니다. 이제 복음은 범세계적이었습니다. 거침없이 복음은 전해졌습니다. 마치 바람이 불듯 복음은 전해졌습니다.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지옥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가정이 건짐을 받고 지역이 건짐을 받았습니다. 국가가 건짐을 받았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전해졌습니다. 다시 하늘로 가서 살아야 할 놀라운 상품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사도들이 이방에 그 선물은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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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를 기다리는 고넬료의 자세(사도행전10:24-33)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막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인과의 교제를 막으셨습니까?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베드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보고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고넬료를 만나고서 확실해졌습니다.
고넬료는 전술한 바와 같이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고넬료를 칭찬합니다. 고넬료는 성령의 말씀을 듣고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도착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집안의 하인 둘과 경건한 부하 중에 경건한 사람 하나를 보냈습니다(7절). 베드로가 오는 사이에 고넬료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습니다. 심지어는 베드로가 들어오니까 그의 발 앞에 절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바로 저지했습니다. 그만큼 고넬료는 경건하여 유대인들보다 더욱 하나님의 백성다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덕목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사무엘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물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신13:4, 삼상28:18), 주의 명령과 경계의 말씀입니다(느9:34, 신30:8).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롬6:17,19). 마음과 성품을 다해야 하며(신26:16, 30:2,10).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민32:11,12,신1:36). 하나님께서 명한대로 순종해야 합니다(왕상9:4,11:38). 즐겨 순종해야 합니다(사1:19).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롬 6:17, 엡6:5).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합니다(고후2:9, 골3:20).
하나님께 우리가 왜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손과 땅의 복을 받으며(창26:4,5),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신30:2,3),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약1:25). 그리스도 사랑 안에 거합니다(요15:10).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출19:5,6), 자손까지 복을 받습니다(신5:29).
우리는 하루 중에 수십 가지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의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날마다 벗어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지나갑니다. 어쩌면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행동입니다.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고넬료는 지배국의 군인으로서 피지배국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들을 고넬료는 해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이래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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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다와 사론에 이른 주님의 복음(사도행전9:32-35)
‘룻다’는 사론평야에 있는 마을입니다. ‘룻다’는 후에 Diospolis로 불렸습니다. 룻다는 쾌적한 유명한 도시로 지중해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위치했습니다. 그 근방에는 바위가 많았지만 욥바(Joppa)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는 큰 암석위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현재는 Japhet(야펫)이라고 부르는 항구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8:25에서 요한과 함께 사마리아에서 돌아온 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복음의 위력만큼 대단한 힘을 가진 사상은 없습니다. 이제 복음은 얼마 되지 않아 서부 팔레스틴 지역에 이미 도달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박해 때에 피하여 도망 온 사람들이 이곳에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룻다에 애니아라 하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니아가 중풍으로 8년이나 침상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데 8년이나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Aijneva, ija'taiv se jIhsou'" Cristov": ajnavsthqi kai; strw'son seautw'/.
아이네아 이아타이 세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아나스테싸이 카이 스트로손 세안토
베드로는 8년간을 침상에 누워있는 애니아에게 말놀이(word-play)를 합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는 것입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베드로가 한 말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자신이 한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서기전까지는 기적을 베풀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을 의존하는데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베드로는 생각 없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애니아는 그 말에 바로 반응을 했습니다. 곧 일어났습니다(eujqevw" ajnevsth/에우쎄오스 아네스테/곧 그녀가 일어났다.). 베드로는 말했고, 애니아는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병이 나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룻다와 사론에 있는 사람들이 주께로 더 돌아 왔습니다. 이 일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날 첨단의 무기들이 가공할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무기들이 마하(음속)이상의 속도로 어떤 지역을 초토화할 만큼의 위력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국가를 지키기위해 만든 무기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보다 더 큰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하가 아니라 빛의 속도로, 어떤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복음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지,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살리는 핵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교회는 성도들입니다. 건물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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